동구를 떠나간 어느 한지공예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1-23 17:37:45
동구를 떠나간 어느 한지공예인
김철성 자유기고가
얼마 전 핸드폰 문자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동구에서 오랫동안 공방을 열었던 어느 한지공예인(님)이 인천의 다른 구로 ‘이사를 갔다’는 내용이다. 답을 보냈다. “동구를 떠나셨다니 제 맘 아프지만, 우일신(又日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한 사람의 공예인이 떠난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향기가 얼마나 그 지역을 문화적인 향기로 가득 채워 지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조선의 개혁 사상가인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양산보가 고향인 담양의 궁벽한 시골에 소쇄원을 짓고 평생 처사로 지냈으나 숱한 사람들이 찾아든 이유는 그 사람의 덕성과 행실의 향기 때문이었다.
님은 동구에 십 년을 훨씬 넘게 둥지를 틀었다. 님은 문화의 황무지, 광야같은 동구 땅 한 모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그것도 땅과 물이 만나는 곳, 세상의 오염된 물을 정화해주는 갯골 근처다. 지금은 복개돼 볼 순 없으나 배가 닿았대서 지명이 붙은 ‘배다리’가 아닌가. 그동안 동구에 자리 잡기까지 숱한 시행착오에 따른 마음고생과 적잖은 경제적 손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난한 시절을 동구에서 보냈지만 화도진축제 때도, 구문화예술인연합전시회 때도 자신을 낮춰 적극 참여했다.
님은 어떤 사람인가. 이미 동아공예대전의 초대작가의 이력을 가진 것을 보면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님의 작품세계를 감히 평할 수는 없으나 단적으로 불역유행(不易流行)으로 표현하고 싶다. 불역유행이란 ‘예술의 본질(전통)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지만 그 표현 방식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님의 작품을 보면 전통에 뿌리를 둔 현대적 재해석의 미학을 담박에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고향같은 동구를 찾을 때면 제일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배다리다. 왜일까. 배다리는 인천의 근현대사의 숨결이 밴 인천인의 고향이기 때문이며, 그 곳에 아벨서점과 태공방이 있기 때문이며, 그 곳엔 올곧게 생명문화를 지켜가는 참주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즉시한 의분에 찬 생각과 행동의 향기가 그리워 찾는 것이다. 그 님들은 마치 ‘향 싼 종이에 향내 나는’것 같은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05년 ‘동구문학’지에 님에 대한 짧은 글을 실은 적 있다. 거기에 님을 추사 선생이 쓴 시 <수선화>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다/성품은 그윽하고 담박하여 차갑고 우뚝 솟았네/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은 못떠났네/맑은 물 해탈한 신선을 진실로 보노라.” 중 “성품은 그윽하고 담박하여 차갑고 우뚝 솟았네”라는 시구로 님의 기질을 비유했다. 그 글을 통해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선생이 고맙다. 그 정도의 탄탄한 실력과 유명세면 동구보다 나은 환경과 조건이 갖춰진 지역에서 활동을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동구에 남아 계시니, 내친 김에 욕심을 내본다. 알아주는 이 없다 해도 동구에 오랫동안 남아 계셨으면”하고 말이다.
동구에 살적에 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중 생각나는 한 가지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서 님의 한지공예품과 필자의 막그림으로 <한지공예와 막그림의 만남전>을 갖기로 했고, 수익금 전액은 송현동 달동네를 노래한 최병구 시인의 <새날의 송가>의 시비 건립 기금으로 사용키로 의기투합했었다.
그런 선생이 동구를 떠났다. 공교롭게도 찬바람 불어 호시절의 꽃들 다 지고 눈밭에서 수선화 피어나는 겨울에 떠나갔다. 왜 떠나가셨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필자보다 더 동구와 문화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개인사가 이유겠으나 지역의 문화적 몰이해와 풍토의 척박성 등도 크게 작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동구에 몸담고 밥 먹고 있는 모든 님들에게. 사람들이 살고싶어 다퉈 찾아오는 동구를 만들어 달라고.
'인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자 녹지축 따라 계양에서 연수까지 (0) | 2023.04.20 |
---|---|
신흥 50주년 기념 책’ 소중한 향토사 자료 (0) | 2023.04.20 |
인천 부호 서상집 ‘매판’ 일수도 (0) | 2023.04.20 |
구월동 이야기 (1) | 2023.04.19 |
1900년대 초의 사무소건축 ‘군회조점(郡廻漕店)’ (1) | 202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