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역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2-10 16:41:28
닿을듯 말듯…기차와 마을의 공존
(5) 수인역
여기가 어디일까. 손님이 들 것 같지도 않은 영양탕집과 낡은 집들, 이제 소용(所用)을 다해 길가에 버려진 듯한 잡동사니 세간들, 그 사이를 비집고 뱀이 기어가듯 S자로 꼬부라져 간 철로. 이런 마을이 인천 어디에 있을까.
사진에서 보면 영락없는 어느 변두리 마을 풍경이다. 철길과 집들이 어쩌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근접해 있을 수 있을까. 기차가 이리저리 꼬부라지면서 혹 이쪽 집 현관이나 건너편 영양탕집 연통(煙筒)을 툭 치고 지나가지는 않을지….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마을은 제 한복판을 철로가 지나가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차가 먼저 길을 냈는지, 마을이 먼저였는데 철로가 끼어들었는지 분간이 어렵다. 기차와 마을이 사이좋게 공존한다는 점! 그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여기가 바로 중구 신흥동 신광초등학교 뒤쪽 옛 수인역(水仁驛) 인근 마을이다. 일대. 어느 지점을 그 시절 수인역사(水仁驛舍)가 서 있던 자리라고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어도, 이 마을이 그 인근이었음은 틀림없다. 물론 여기 역이 폐쇄될 때까지, 기억으로는 이렇게까지 집이 뻗어 있지는 않았었다. 집들은 그 후에 들어섰을 것이다.
더구나 1930년대 후반 일제에 의해 수인선이 부설되었을 때는 이 일대가 해안이었으니 마을이 훨씬 뒤에 들어온 것이 맞다.
수인역이라는 이름은 1948년에 지어졌다. 먼저는 그저 인천항에 닿아 있었으니까 항역(港驛)으로 불리었는데 그렇게 개명이 되고 만 것이다. 수인역이라는 역명이 인천 사람으로서는 좀 자존심이 상한다. ‘인수역(仁水驛)’이 옳지 않은가.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마저 모두 그것이 귀에 익어서인지 “수인역, 수인역” 이렇게 말한다.
기찻길은 녹슬어 있다. 침목도 제멋대로다. 낡은 마을 집들과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정말 기차가 다니기는 하는 것일까. 옛날처럼 협궤 선로가 아니어서 앙증맞고 오종종한 느낌은 없지만, 이렇게 빈 모습이 가슴속을 춥게 쓸고 간다. 그래서 이렇게 썼었다.
“도시 한복판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이 이렇게 한가롭고 적막하다. 그 시절 수원에서 달려온 두 칸짜리 꼬마 열차는 이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피로도 더위도 다 잊은 채, ‘왜애액’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이제 다 왔다고. 이제 곧 마지막 종점 수인역에 닿을 거라고. 할아버지, 아저씨, 아낙네, 마나님, 그리고 다리가 묶인 닭들도, 돼지새끼도, 쌀자루, 참깨보퉁이, 콩깍지, 참빗, 담뱃대도 내릴 준비를 하라고.
그렇게 번창했고 부산했던 이곳 일대가 이제는 인천시내에서 가장 조용한 변두리가 되었다. 허술한 ‘만복 미용실’과 영양탕집과 복집이 이곳을 한 10년은 뒤로 돌아가게 했다.
그렇다. 낡은 벽돌 창고 건물처럼, 이 골목이 이제는 한없이 느리고 한가롭고 너그러운 어느 소도시의 얼굴로 착하게 서 있는 것이다.”
기차는 언제 올까. 수인선이 다시 열리면 기차는 이쪽으로 오는 걸까. 옛날처럼 장이 서고, 사람 부대끼고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릴까. 인천의 얼굴이여. 오늘 바람 속에 젖고 있는 향수의 시(詩)여.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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