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포구 골목길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3-07 21:54:18
거대한 공장 틈새 ‘동화 속 통로’
(9) 북성포구 골목길
이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문득, 무슨 동화 속 통로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곧장 뻗은 길 저 끝에서 꼬부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앞서 이 길을 지나간 자들의 주검이 나뒹굴고, 그 뒤에 거미줄과 박쥐와 불길한 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검은 두건을 쓴 음험한 마녀가….
그러나 골목에서 꺾여진 안쪽에는 축대 아래 개천 같은 바다와 십여 척 작은 어선들이 올망졸망 와 닿는 소박한 부두 ‘턱’이 나온다. 그 좁은 축대 위에는 철따라 우럭과 광어, 낙지, 주꾸미, 밴댕이, 소라 따위를 파는 옹색한 횟집들이 늘어서서 여기 순례자들을 잡아들인다.
옛날 이곳을 처음 지나갈 때는 참으로 적막했었다. 종일토록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축대는 잡초가 무성했고, 어쩌다 세상을 등진 강태공 두엇만 물가에 나앉아 맑지 않은 수심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망둥이를 건져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때가, 그러니까 아마도 1970년대 중반 무렵일 것이다. 여기로 드나들던 어선이며, 도서지방을 통행하던 선박들은 모두 방금 새로 생긴 연안부두나 아니면 멀리 소래포구로 옮겨 가고, 아주 드문드문 길 잃은 철새처럼 통통배 한두 척이 와 옆구리를 대고는 했다.
조금 으스스했던 것은 그 긴 축대가 다시 월미도 방향, 그러니까 대한제분 정문 쪽으로 꺾이는 모서리에 서 있던 초소 때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간첩이니, 무장공비니 하는 흉흉하고 불안한 단어가 자주 신문에 오르내렸었다. 초소에서는 경찰이었는지, 방위병이었는지, 이따금씩 방향 없이 들어서는 행인들의 통행을 제지하거나, 주민증을 검색했다.
그 입구인 이 골목은 축대를 따라 넓은 매립지를 차지한 대한사료회사와 고려·중앙조선소 사이에 난 ‘ㄱ’자형 골목이다. 겨우 두 사람이 바짝 붙어 지나갈 넓이에, 길이라고 해야 총 3~40미터에 불과하겠지만 좁고 막막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오히려 매력적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통로를 지나가는 것 같다. 정말 한 편의 동화,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 든다.
인천에 어디 또 이런 골목이 있을까. 두고두고 보존했으면 싶다. 워낙 우리 모두가 개발이니, 또 재개발이니 하는 말에 중독이 된 터라 관에서 넓게 길을 내고 주변을 정비한다고 하면 모두 쌍수로 찬성하고 나설 것이다. 때문에 이 매력덩이 골목길은 언제 어떻게 휑한 대로가 될지 모른다. 근처가 공장지대인 데다가 인근 동네도 몹시 낙후되고 을씨년스러워서, 틀림없이 그런 것을 핑계 삼아 일을 벌일지 모른다.
물론 지금 골목은 둘러쳐진 험한 철망과 낡은 철 구루마와 휴지 따위로 다소 정감을 가시게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을 깨끗이 정비하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골목 자체를 밀어버리거나 다른 어떤 처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대로 고운 재산으로 두어야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소설가 몇과 우리 인천 작가 몇하고 며칠 전 이 골목을 지나갔었다. 우리 모두 27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 속, 거대한 공장들 틈에 자리잡은 ‘변두리 낡은 골목과, 가난하고 소박한 시골 어촌’을 목도하고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이게 인천이야! 우리가 정말 인천을 찾은 거야.” 얼마나 재미있는가. 북성포구 골목길이 얼마나 동화 같고 감정적인가. 가보면 안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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