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송도 국제도시-가도 가도 끝없이 먼 ‘원우금’<遠又今>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8-01 15:21:38
가도 가도 끝없이 먼 ‘원우금’<遠又今>
(29) 송도 국제도시
2009인천세계도시축전이 8월7일 드디어 막이 오르게 된다. 이제 채 열흘이 남지 않았다. 인천시가 벼르던 이 80일 간의 축전이 ‘소녀시대’ 아홉 아가씨들의 귀엽고 발랄한 노래 가사처럼 정말 ‘미래 도시 여행’이 되기를 기대한다.
축전이 열리는 주 무대는 송도국제도시인데, 이 ‘송도(松島)’라는 지명을 들을 때면 문득 아쉬움과 함께 정겨운 우리 옛 지명 ‘먼어금’ 혹은 ‘원우금(遠又今)’이 떠오른다.
원우금은 발음이 좀 다르게 ‘원우이(遠又爾)’라고도 불렸는데, 이 지명들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멀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먼 듯하지만 가보면 가깝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 옛날 긴 해안선과 광대한 갯벌을 가진 옥련동, 동춘동, 청학동 일대를 그 지리적 특징으로 아우른 이름이었다.
여기서 아쉬움을 표한 것은 바로 ‘송도국제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 전부터 써오던 전래 지명인 ‘먼어금국제도시’나 ‘원우금국제도시’였다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특히 ‘원우이국제도시’라고 했을 때는 서양인들이 발음하기에도 무난했을 것이다.
송도라는 지명은 누차 증명된 대로 일제가 우리 고유의 지명을 말살하고 저들이 기호(嗜好)하는 이름인 송도를 멋대로 이 일대에 갖다 붙인 것인데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제 것인 양 쓰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섬도 아닌, 바다를 메운 인공 매립지에 세운 도시가 아닌가.
송도 지명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은 광복 후 모든 동명, 지명을 우리 식으로 고치면서 유독 수인선 ‘송도역’과 ‘송도유원지’ 명칭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던 까닭이 아닌가 싶다. 물론 후에 자리잡은 송도고등학교는 여기 지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성(開城), 즉 송도(松都)임을 밝혀 둔다.
아무튼 1970년대까지는 이 일대는 말 그대로 ‘먼어금’이었다. 포장이 안된 자갈길에 이따금씩 지나가는 버스가 먼지를 하얗게 날리는 시골이었다. 주말이면 그 먼 길을 걸어서 원우금에 가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낭만 그 자체이기도 했다.
늦가을 역 마당에 아직 남은 몇 송이 코스모스가 쓸쓸하게 서서 헤살거리는 그 길을 걸어 갯가로 가고는 했다. 겨울에도 가끔 그 차가운 바다를 보며 능허대 백사장 만곡(彎曲)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는 일도 있었다.
사실 먼어금 바다는 물결도 좋은 것이지만, 유원지 둑에서 바라다보는 아암도 풍경도 참으로 가슴을 아련하게 했다. 시내에서 숭의동을 지나, 용현동을 지나, 극동방송 앞을 지나, 혹은 수인선 작은 철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 조개고개로, 아니면 송도학교가 들어서기 전의 서낭당, 점말, 백사장, 능허대, 그리고 유원지로 가는 그 뽀얀 동화 속 먼지 길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몇 병의 소주와 안주 꾸러미를 들고 가는 먼어금 길에는 시가 있었고, 그림이 있었고, 노을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저녁노을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인천 사람’이라는 누구의 낮은 음성도 들려왔었다.
이런 원우금이 정말 창상지변(滄桑之變)이라 할 만큼 변화를 거듭했다. 해안은 모조리 사라지고 거대한 ‘송도 신도시’가 생겨나고 거기서 세계도시축전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저런 추억과 아쉬움 속에서도 축전의 성공을 빌어본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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