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초대 인천박물관장 이경성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12-09 18:59:15
생면부지 우현과 편지왕래 법률 대신 미술의 길로…
(45) 초대 인천박물관장 이경성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이자 미술 비평의 개척자인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지난 27일 12시30분 미국 뉴저지의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이렇게 지난 11월30일자 인천의 일간신문들은 일제히 석남(石南) 이경성(李慶成) 선생의 부음을 전했다. 그리고 저마다 면(面)을 넓혀 인천이 낳은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 쓰러짐을 애석해했다.
(고 이경성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 장례미사가 지난달 30일 미국 뉴저지에서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장례식장 정면 모습.)
동구 화평동 출생이나 선생은 서구 석남동(石南洞)의 ‘석남’을 떼어 평생 아호로 삼았다. 석남동이, 선산이 자리한 연유였다. 다시없는 인천인! 선생은 가슴으로 인천을 산 영원한 인천 사람이었다. 해서 선생을 추모하는 인천 각계의 애도가 더욱 슬프고 엄숙했다.
“따지고 보면 우현(又玄) 선생과 이경성 두 사람은 얼굴 한 번 마주칠 기회도 없었다.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관계였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두 사람을 잇게 한 교량은 이경성 전 관장이 우현 선생에게 낸 편지였다. 서신 왕래로써 교류의 길이 트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교류가 이경성을 법률이 아닌 미술의 길로 가게 한 것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채록 연구가 이인범이 기록한 이경성 관장 구술(口述)이다.
‘그 양반은 내동(이 부분은 용동을 잘못 기억한 것이지, 이경성 관장의 착각인지 모른다)이고 나는 경동이고, 이웃 동네예요. 그래서 나, 나는 어… 만나, 만나지는 않았지. 그 편지로 와, 왕복해서 만났지. 내, 내가 박물관장 된 것도 그 양반 뭐랄까. 그 권고….’
구십에 가까운 노구의 가쁜 호흡 속에서, 이렇게 띄엄띄엄 더듬으며 이경성 전 관장은 자신이 미학, 혹은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것이 고유섭(高裕燮) 선생의 어떤 권고라고 말한다.
‘선생님의 인제,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하시게 된 것도 고유섭 선생님의 어떤…?’
‘그럼, 그럼. 더군다나 이례적으로 인천에다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그 아이디어가 고유섭 선생님의 권고랄까?’
어느 날 이경성 전 관장은 우현 선생에게 언젠가 인천에도 박물관을 짓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우현 선생은 답장에서 이경성이 내놓은 이 뜻밖의 아이디어를 격려, 권고하면서 더욱 이 분야 학문에 정진할 것을 주문했을 것이다.
애초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려던 이경성이 법학을 접고 미술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고, 마침내 우현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기까지의 그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옳을까. 거기에는 실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우연이 게재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 전에 쓴 졸고 몇 줄을 옮긴다.
그 이유는, 석남 선생이 법학도이면서 아무런 학문적 상관이 없는 미술에 눈을 뜨게 되는 동경에서의 운명적인 사건, 즉 인천 출신 조각가 조규봉, 훗날 흑인시를 쓰는 영문학도 배인철 등과의 만남, 그리고 배인철에 의해 만나게 된 우현 선생의 조카 이상래와 그래서 이루어진 우현과의 편지 왕래.
다시 말해서 ‘이경성을 고유섭에게로 향하게 한 이 특이한 우연’을 발설하고 싶어서이다. 아니 우리 인천이 낳은 한국고미술사학의 태두이며 초대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우현으로부터 석남에게로 이어진 이 알 수 없는 ‘필연의 흐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인천박물관에서 석남 선생을 영결(永訣)한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빈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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