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과 중화루의 이야기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8-05-30 23:12:22
開港百年 7
세력다툼의 현장 - 인천의 3地界 中
*대불호텔과 중화루의 이야기*
[중략]
얼핏 보기에는 청국지계 같지만 일본지계 첫머리자리 중구 중앙동 1가17에 청국풍 건물양식의 허름한 3층건물 중화루가 있다. 4인교나 당나귀를 타고 서울을 가야했던 그 당시 한국을 찾는 구미인은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을 수 없었다. 중화루는 바로 이점을 노려 1887년 일본인 '호리 리기타로오'가 지은 호텔이다. 이름은 '대불호텔' 훌륭한 양식침실및 식당을 갖추었다 한다. 한동안 재미를 보다가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된 후부터 수지가 맞지 않아 중국인에게 팔아 넘겼다. 중국인은 건물을 개조 '중화루'란 간판을 내 걸었다 이때부터 사천성 요리로 명성을 날려 서울등지에서 고관 갑부들이 구름처럼 몰려 왔다 한다. 지금도 '中華樓'란 금박간판이 뚜렸하다.
폐가가 다 된 이 건물에 현재 중국인가구 10가구가 사는데 한국인으로는 중국인 부인 2명뿐이다. 이 건물 관리인 정 윤분부인[52]은 빙긋이 웃을 뿐 입을 떼지 않는다. 꽃무늬로 아로 새긴 난간엔 헌 누더기조각이 바람에 펄럭이고 빛바랜 하늘색 덧문도 낙서투성이다.
각국지계 자리를 찾았다. 이 지계가 시작하는 중구 송학동 3가7. 옛 타운센드양행 자리, 현재의 '크라운 볼링센터'에서 삼성당시계점까지 50여미터 거리에는 문방구등 갖가지 상점들이 빽빽이 들어 섰다. 앞길은 폭이 10m나 될까 12m가 넘을까,하여간 널찍하다. 양쪽으로 뻗친 직선길이는 1km가 넘을 듯 싶다.1백년전에 낸 길이 요즘 추진중인 인천시 도시계획에 추호도 빗나가지 않는다. 이때문에 이 지역은 소통이 잘돼 교통체증을 모르는 곳이다. 이 곳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인 당시 조선인촌 지역은 지금도 꼬불꼬불 길이 막혀 차량통행은 커녕 보행도 어려운 상태다.
각국지계의 자치기구로 '각국지계시공서'가 있었다. 그 산하에 시의회와 경찰서를 두었다. 송학동 3가3, 당시 속칭 '各國경찰서'로 불리던 시공서건물은 2층벽돌집으로 건평이 1백12평이나 돼며 순경합숙소,유치장까지 갖춰 있었다 한다. 이 건물은 1922년 헐리고 그 자리에 견고한 벽돌건물이 들어서 인천공회당,인천상공회의소로 사용되다 인천상륙작전때 포격으로 허물어졌다. 지금 그 자리에는 인성여중고교 체육관이 들어 섰다.새하얀 페인트의 깨끗한 3층 건물이다.하얀 체육복을 산뜻하게 차려 입은 여학생들이 실내탁구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전을 벌이고 있다. [1976년 2월13일자 동아일보 조 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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