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 제물포 풍경' - 김 기림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21-07-03 10:29:17
축항에서 바라 본 만국공원, 공원위의 뾰죽한 건물이 존스톤 별장
'길에서 - 제물포 풍경' - 김 기림
<기차>
모닥불 붉음은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인천역>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성냥개비나
사공의 '포케트'에 있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조수>
오후 두 시......
머언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어서는
휘파람을 불며불며
검은 조수의 떼를 모아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고독>
푸른 모래밭에 가빠져서
나는 물개와 같이 완전히 외롭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찬 달빛의 은혜조차
오히려 화가 난다.
<이방인>
낯익은 강아지처럼
발등을 핥는 바닷바람의 혓바닥이
말할 수 없이 사롭건만
나는 이 항구에 한 벗도 한 친척도 불룩한 지갑도 호적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이방인이다.
<밤 항구>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파선>
달이 있고 항구에 불빛이 멀고
축대 허리에 물결 소리 점잖건만
나는 도무지 시인의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빠이론'과 같이 짖을 수도 없고
갈매기와 같이 슬퍼질 수는 더욱 없어
상한 바위틈에서 파선과 같이 참담하다.
차라리 노점에서 임금(林檎)을 사서
와락와락 껍질을 벗긴다.
<대합실>
인천역 대합실의 조려운 '벤치'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하게 이 밤을 자거라
# 태양의 풍속 - 1939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식이 거행된 것은 1899년 9월 18일로, 이 작품들이 발표되기 30여 년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기차’ 및 ‘역 대합실’ 등의 모습은 시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1연의 「기차」에서처럼 석양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광경은 더욱 그러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이 근대화된 삶의 현실 상황이 당시 이곳에서 생활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의 여건을 제공해 준 것이 아니었음은, 8연의 「대합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는 대합실 ‘안’과 ‘밖’의 대비를 통해 그 안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깨끗하고 순결한데 반해 그 밖에서 그는 다시 때가 묻을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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