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 사모지고개-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12 12:19:02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갑옷바위
예전에 사모지 고개에서 동춘동쪽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바위 하나가 있었다. 이 바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 바위 석함에 갑옷을 넣어 두었다 하여 갑옷바위였다. 그러나 실상은 상자 바위로 불리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바위는 사방 둘레에 금이 가 있는 데다가 아래위 바위 두 개가 뚜껑을 맞춰 덮은 모양으로 포개져 있는 것이 영락없는 상자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자 아래 부분은 일찍이 없어지고 뚜껑 형상의 바위는 얼마 전까지도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화가 되면서 이 또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옛날 어느 이름 모를 장수가 바위 아래부분에 물건을 넣어 둘 수 있게 석함을 파고 그 속에 자신의 투구와 갑옷을 넣어 두고 그 위에 바위 뚜껑을 덮었다는 것이다. 장수는 훈련을 할 때는 이곳에 와서 돌 뚜껑을 열고 갑옷과 투구를 꺼내어 입고, 다시 훈련을 마치면 갑옷과 투구를 가지런히 이 석함 속에 벗어 넣어 두곤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산에 있던 안관당을 지키던 당지기가 부쩍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 장수를 빼고는 누구든지 이 석함에 손을 대는 자는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당지기는 꼭 한 번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저 속에 과연 장수의 갑옷과 투구가 들어 있다는 건가? 아니면 헛소문이거나 혹 다른 물건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당지기는 손으로 바위를 두드려 보기도 하고 힘껏 들어 보기도 했으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세고 무술이 뛰어난 장수나 쉽게 바위 뚜껑을 열고 갑옷과 투구를 꺼내곤 하는 것이지 일반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쉽게 열고 닫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에 당지기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디 한 번 꼭 열어 보고야 말 테다. 무엇이 있는지 보기만 하고, 설혹 물건이 있다 해도 그것을 꺼내 손을 대지만 않는다면 뭐, 별일 없을 것이 아닌가. 내가 먼저 열어 보고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지.”
당지기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망치를 품에 넣고 갑옷바위로 다가갔다.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주위는 고요했다. 위에 덮여있는 뚜껑을 깨뜨리기보다는 아래 부분을 망치로 때려 부수는 것이 훨씬 수월할 듯 싶었다.
“몇 번만 세게 치면 깨어져서 안이 들여다보이겠지.”
그렇게 땅땅 망치질을 하기 시작하고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지가 진동하면서 벼락이 치는 것이었다. 청천 하늘에 갑작스런 천둥 번개에 놀라 나뒹굴어진 당지기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망치도 집어던지고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다행히 벼락을 맞아 죽지는 않고 놀라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갑옷바위 아래 부분은 조금 깨어져 조각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이 바위는 당지기가 그때 망치질을 해서 아래 부분이 깨어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그러나 문학산 사모지 고개 근처는 인천에서도 많은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한데, 이 전설 속의 그 당시 장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장수는 왜 하필이면 여기 바위 속에 갑옷과 투구를 감춰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또 이 전설 속의 시대가 대충 언제인지, 그리고 이 갑옷바위 전설이 우리 인천 지역에서 외적의 침략을 막았다든가 하는 내용의 어떤 전설과 하등의 연관이 없는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문학산 부근의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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