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구라(忠臣藏)
주신구라(忠臣藏)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8-10 17:02:01
주신구라(忠臣藏)
미추홀
일본의 고전소설 가운데 '주신구라(忠臣藏)'라는 작품이 있다. 주군을 잃은 46명의 사무라이 '로닌(浪人)'이 자신의 주군 '엔야 한간'을 할복으로 몰고 간 '모로나오'에게 2년을 기다려 원수를 갚았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춘향전'이나 중국의 '삼국지'에 필적할 정도로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때도 시도없이 영화화 되었는데, 1908년부터 1952년까지 무려 74편이 제작됐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열광(熱狂)'인 것이다.
이를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의 저자 김려실은 "군국주의자들이 주신구라에 주목한 이유는 이 영화에 나오는 무사도가 군국주의적 도덕률로 변용되었고 그것을 군인의 행동 강령으로 관습화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군인들 앞에서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의 '희극에 가까운 비극'은 주신구라의 최신판"이라며 일본 사회가 '주신구라 신드럼'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가미가제 특공대'를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해석이라 하겠다.
그것이 야쿠자의 세계로 전이되면 '오야붕'과 '꼬붕'으로 이름이 바뀌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이 '오야붕'은 주군과 다름없는 권력의 화신이요 '꼬붕'은 몸과 마음을 바쳐 평생 주군을 섬겨야 하는 사무라이와 진배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느 나라의 그 어떤 '주신구라'도 용납되지는 않는다. 주군도 없고, 로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회가 지켜내야 할 명분과 의리는 언제 어디서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주신구라는 적어도 저 혼자 살자고 할복 대열에서 이탈했던 사무라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돌이키게 한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