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들의 생각

배다리-우각로'는 살려야

형과니 2023. 4. 14. 07:13

배다리-우각로'는 살려야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8-13 16:13:02

 

'배다리-우각로'는 살려야

이성진 영화여자정보고 교사

 

 

개항장의 역사문화는 보존할 가치가 있고, 개항장 밖의 역사문화는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인천시 중구는 지금 사라진 일본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짝퉁 일본식 건축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인 거리는 몰려오는 외지인들에게 중국음식과 중국물품을 팔기에 여념이 없다.

 

국적불명의 잡탕 건축물이 들어서고 예전의 중국식 건축물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오직 자본이 판을 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 연장선으로 일본-청국지계 경계계단 아래 일본인 지계 내 가옥에 국적불명의 일본식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덧칠을 하고 있다. 중국인 거리에 머물다가 가는 외지인을 일본인 지계까지 끌어들여 점차 쇠퇴해 가는 신포동 패션거리를 살리고자 하는 몸부림인 줄은 안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비일본식 건축물을 만들 필요까지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예전처럼 지금도 개항장 역사문화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자장면의 원조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인천 역사문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개항장 밖의 역사문화는 점차 훼손되고 있다. 개항장 밖 역사문화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배다리-우각로근대 역사 문화가 신흥로-동국제강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두 동강이 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개항 이후 인천으로 흘러들어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배다리-우각로가 개발이라는 괴물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상업적 가치성이 있다는 이유로 사이비 개항장 문화역사를 복원하려고 야단치면서, 또 한편에선 엄청난 문화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개항장 밖 역사문화의 핵심지인 배다리-우각로를 훼손하는 웃기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배다리-우각로는 혹독한 일제 하에서도 강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일제에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산 곳이다.

 

1920년초 조선인촌(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본인의 차별대우에 저항해서 파업을 주도하였다. 바로 그 노동자 대부분이 배다리-우각로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배다리-우각로와 송림동 일대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경찰서를 세웠다. 단지 기록은 남지 않아 그 실체를 살펴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인천 근대역사는 인천 개항25년사’, ‘인천사정’, ‘인천번창기1933년 인천부사 등 일본인에 의해 편찬된 것이 주류를 이뤘다.

 

해방 이후 발행된 인천시사 등 인천 역사 관련 서적들도 대체로 일본인들이 편찬한 인천 역사서에 크게 의존하였기 때문에 개항장 밖의 근대역사에 대한 인식 틀은 일본인들이 편찬한 역사서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인천 근대역사는 일본인들이 개척한 개항장 중심의 역사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자연적으로 일본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인 배다리-우각로를 중심으로 하는 개항장 밖의 근대역사문화는 소외되었다.

 

오히려 그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직도 배다리-우각로일대에서 훼손되지 않은 인천 근대역사문화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다리-우각로는 인천 근대역사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곳에 가면 개항장 중심의 역사문화에서 맛볼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배다리-우각로에서 싸리재 길과 함께 옛 인천의 넉넉함과 정겨움을 맛볼 수 있는 굽은 길이 있다. 동요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가 걸어 다니신 꼬부랑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천근대의 옛 길을 볼 수 있다.

 

개항 초기부터 중앙동-신포동-싸리재-배다리-우각골까지 연결되는, 서울로 오가는 이 길은 인천 최초의 근대길이다. 그 길 따라 수많은 인천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갔고 내려왔다.

 

또한 인천의 소년 소녀들이 근대교육을 받기 위해 청운의 꿈을 안고 걸어 다녔던 인천 근대교육이 시작된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제시대 때 노동 품을 팔아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배다리에 모여들어 생겨난 배다리시장이, 전쟁 이후에는 불타는 지식열을 충족시켜준 배다리 책방거리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천 근현대 역사문화가 꽃 피웠던 길이었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가치성이 큰 배다리-우각로를 절단하는 신흥로-동국제강간 산업도로 개통공사를 인천시가 지역주민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인천시에 의해 배다리-우각로가 지니고 있는 인천근대교육의 시원지(영화학교, 인명학교, 창영학교), 인천 3.1만세운동의 시발지(창영학교), 한국 기독교 신학의 시원지(신학월보 및 신학회), 한국철도의 시발지(우각역)라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성이 크게 훼손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배다리-우각로는 인천 근대역사문화의 심장이다. 인천시에서 인천 근대역사문화의 심장을 절단하는 무모한 일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데도 침묵을 하고 있거나 무관심하다.

 

오늘도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배다리-우각로를 드나들며 흙을 퍼내고 있다. 그 흙은 배다리-우각로에 흐르는 인천근대역사의 살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