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교명(校名)

형과니 2023. 4. 18. 07:21

교명(校名)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1-14 15:23:42

 

교명(校名)  

미추홀

 

구한말 인천부(仁川府)에는 10개 면이 있었다.

 

지금의 연수구는 대부분 먼우금면에 속했는데, 바닷가에 큰 갯골이 있어 '배로 다니면 가깝지만, 걸어가면 멀다'는 뜻에서 멀 '', 가까울 '' 자를 써 원우이면(遠又爾面) 등으로 적었다.

 

1906년 행정 개편 때는 '인천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면(西面)으로 바뀌었고, 1914년 전국 행정 구역 조정 때는 부천군 문학면에 속하는 동시에 옥련리(玉蓮里), 연수리(延壽里), 청학리(靑鶴里), 동춘리(東春里) 등의 '()'로 나뉘었다.

 

그랬던 것을 1936년 일제(日帝)가 인천의 땅이름을 일본의 해군 제독, 육군 대장, 군함의 이름으로 모두 바꿀 때, '옥련리''송도정(松島町)'으로 정해 버렸다. 송도함(松島艦)의 전승을 기린다며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이었다.

 

광복 후 '송도정'이란 일본식 이름을 뽑아내고 '옥련동(玉蓮洞)'으로 되살려 놓은 것은 우리 땅이름을 지켜낸 좋은 예였다. 그런데 그 같은 사정을 몰랐던 시와 연수구가 신도시의 이름을 '송도'로 되돌려버린 것은 황당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도 '옥련여고(玉蓮女高)'의 교명(校名)은 눈길을 모은다. 건학의 뜻이나 지역적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교명을 짓거나, 무미건조하게 동서남북의 위치만을 가리키고 있는 경우와는 달리 그 말뜻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옥련여고는 대부분의 학교가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해 칭송을 받고 있다. '연정 갤러리', '밤샘 독서 프로그램', '찾아가는 음악회', '꽃동네 방문 봉사' 등이 그것인데, 학생들의 앞날의 행로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보인다.

 

만사, 이름이 바라야 그 아래 모인 이들이 지향하는 길도 크고 바를 것이라 생각한다.

 

/조우성 <객원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