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불평등 수도(水道) 

형과니 2023. 4. 18. 07:55

불평등 수도(水道)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11-25 14:01:32

 

불평등 수도(水道)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 수 없었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비류(沸流) 시대의 물사정을 전하고 있다. 당시의 지질적 특성을 추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물이 부족하고 짰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던 것 같다.

 

개항 직후, 인구가 급속히 늘어가자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됐던 것 역시 물의 보급이었다. 우물 몇 군데로는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052월 일본인 거류회의 도미타 코지(富田耕司)가 제안한 수원지 건설이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상수도 대신 문학산 계곡을 막아 빗물을 모으고 그를 정수해 급수하자는 것이었는데, 규모가 적어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 후 수원지를 한강변 노량진으로 하고 급수 지역을 서울, 용산, 인천으로 하는 경인수도건설계획이 세워지자 19066월 탁지부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11월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13개월여의 공사 끝에 19109월 기관실, 침전지, 여과지 등을 갖춘 노량진 수원지와 지금의 동구 송현동에 배수지를 준공하였다. 1030일 통수식(通水式)을 거행하였고 그 이튿날인 121일 역사적인 급수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다 되는 인천의 상수도(上水道)에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는 본보의 보도가 있었다. 수질 악화로 과거 노량진에서 취수하던 원수를 팔당 댐에서 끌어오자니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는 말에 수긍한다 해도 그렇다.

 

인천 시민이 부담하는 원수 요금이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 5개 광역시를 다 합친 금액보다 더 많은 755억 원이며, 1인당 원수 비용도 1800원인 대전의 16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상식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국가 행정'의 표본 같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