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지붕없는 박물관
형과니
2023. 4. 19. 00:15
지붕없는 박물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11-25 14:08:22
지붕없는 박물관
병자호란-10만대군의 오랑캐가 압록강을 건너 삽시간에 밀고 내려오자 대군과 비빈들은 강화도로 피난하고 길이 막혀 따르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처절한 항전 끝에 임금은 삼전도의 치욕을 감수해야 한다.
비보를 접한 김상용은 강화성 남문에서 화약 더미에 올라 웃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유표로 삼게하고 담뱃불로 인화해 폭사한다. 그러니 그의 육신은 간곳이 없고 단지 신고 있던 신발이 멀리 날아갔다. 오늘의 선원면 선행리이며 그 자리에 그를 기려 강화유수 허휘가 현충사를 세웠는데, 효종으로부터 충렬사로 사액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척화를 반대하여 청나라에 끌려갔던 김상헌과는 형제지간이다.
그런데 그의 충의는 오래도록 살아 있어서 강화읍 관청리의 순의비각 비신에서는 나라에 큰 재난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호인 선원 그대로가 그곳에 남아 선원면이라 불리운다.
거듭 말하거니와 선원 선생의 순절 현장은 강화산성 남문이다. 오랫동안 폐허로 있던 것이 1980년 복원되었는데,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천도하면서 축성한 것이다. 비록 대륙군에 쫓겨왔을망정 개경을 그리워하여 산 이름도 송악으로 하고, 축성하면서 성문 이름도 개경의 것을 따다 붙였다. 그리고 대규모의 내외성을 수축했다.
강화산성은 내성의 경우 높이 3m로 둘레가 7천122m에 이른다. 토성으로서 강화읍 북산에서 선원면에 걸쳐 있다. 4대문과 2개의 수문이 있다. 동문은 망한루요 서문은 첨화루, 남문은 안파루, 북문은 진송루이다. 그러나 40년의 항쟁끝에 강화가 성립되자 성벽을 헐어내는 비운을 맞는다. 그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우뢰소리 같아 아녀자들이 모두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세계역사도시를 위한 유네스코 워크숍에서 강화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워크숍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한다. 강화산성뿐 아니라 강화도에는 역사유적이 풍부하여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병자호란-10만대군의 오랑캐가 압록강을 건너 삽시간에 밀고 내려오자 대군과 비빈들은 강화도로 피난하고 길이 막혀 따르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처절한 항전 끝에 임금은 삼전도의 치욕을 감수해야 한다.
비보를 접한 김상용은 강화성 남문에서 화약 더미에 올라 웃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유표로 삼게하고 담뱃불로 인화해 폭사한다. 그러니 그의 육신은 간곳이 없고 단지 신고 있던 신발이 멀리 날아갔다. 오늘의 선원면 선행리이며 그 자리에 그를 기려 강화유수 허휘가 현충사를 세웠는데, 효종으로부터 충렬사로 사액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척화를 반대하여 청나라에 끌려갔던 김상헌과는 형제지간이다.
그런데 그의 충의는 오래도록 살아 있어서 강화읍 관청리의 순의비각 비신에서는 나라에 큰 재난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호인 선원 그대로가 그곳에 남아 선원면이라 불리운다.
거듭 말하거니와 선원 선생의 순절 현장은 강화산성 남문이다. 오랫동안 폐허로 있던 것이 1980년 복원되었는데,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천도하면서 축성한 것이다. 비록 대륙군에 쫓겨왔을망정 개경을 그리워하여 산 이름도 송악으로 하고, 축성하면서 성문 이름도 개경의 것을 따다 붙였다. 그리고 대규모의 내외성을 수축했다.
강화산성은 내성의 경우 높이 3m로 둘레가 7천122m에 이른다. 토성으로서 강화읍 북산에서 선원면에 걸쳐 있다. 4대문과 2개의 수문이 있다. 동문은 망한루요 서문은 첨화루, 남문은 안파루, 북문은 진송루이다. 그러나 40년의 항쟁끝에 강화가 성립되자 성벽을 헐어내는 비운을 맞는다. 그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우뢰소리 같아 아녀자들이 모두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세계역사도시를 위한 유네스코 워크숍에서 강화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워크숍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한다. 강화산성뿐 아니라 강화도에는 역사유적이 풍부하여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