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어용화사(御用畵師)

형과니 2023. 4. 22. 10:43

어용화사(御用畵師)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3-01 12:55:59

 

인천 출신인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화백이 어용화사(御用畵使)가 된 것은 1912년이었다. 당시 화단의 쌍벽이던 안중식, 조석진이 주도하던 경성서화미술원에 입학하자마자 순종(純宗)의 사진을 받아 모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솜씨가 뛰어났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당시 화원(畵員)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일 수밖에 없는 어용화사가 된 것은 그 자신조차 예견하지 못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이당은 혼신의 노력 끝에 1916년 순종의 반신상을 완성했다.

 

그 후 이당은 초상화 제작에만 그치지 않고 서양 화법 등을 소화해 내면서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전개해 이른바 '동양화 6대 작가'1인이 되었고 1936년에는 문하들이 '후소회'라는 그룹을 만들어 매년 전시회 등을 열었다.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같은 화단의 원로가 후소회 출신이라는 것은 이당과 후소회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19792월 이당이 작고하자, 그해 10월 유족과 후소회가 인천시 중구 송학동에 '이당기념관'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1988년 운영상의 이견으로 문을 닫았고, 1937년의 '금차봉납도' 제작 등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는가 하면, 논개와 춘향의 영정을 철거하기에 이르는 등 작가로서의 명예가 여지없이 실추되고 말았다.

 

최근, 인천의 모 화가가 퇴임한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용'(御用)제도가 있던 옛날 같으면 '가문의 영광'이겠으나 없어 진지 오래고 대통령이 평소 '경향'이 맞는다고 생각해 그림을 부탁했다는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새삼 고금의 권력과 '코드'와 예술의 근친적 함수관계를 생각케 한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