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들의 생각

인천 역이름 문제있다

형과니 2023. 4. 23. 08:38

인천 역이름 문제있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3-29 17:51:25


인천의 역(驛) 이름, 문제 있다 /조우성(시인)


지난 주, 눈길이 가는 뉴스 하나가 있었다. 하도 들어 진저리가 나는 수도 이전이나 보안법 존폐 문제가 아니라, 경춘선에 ‘김유정 역(驛)’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김형직군(郡)’, ‘김책시(市)’ 같은 북한식 지명이나 우리 우표, 화폐에는 이따금 인물이 등장했었지만 역 이름에 ‘사람’이 오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939년 개통이래 65년간 사용해 오던 역 이름(경춘선 신남역)을 오는 12월 1일을 기해 일거에 바꾸는 이유는 그 곳이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임을 알리고, 그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것이라 한다.


일단은 춘천시의 청을 받아들인 철도청을 칭찬해야겠다. 그러나 돈벌이만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 정신없이 뛰어온 철도청이었다. 소위 민자역(民資驛) 건설 붐이 그 하나다. 30년 전만 해도 전국 각처의 정거장 일대는 그 도시의 광장이었다. 분수대가 있고, 야외 벤치가 놓여 있는 만남의 장소요, ‘무슨무슨 궐기대회’를 여는 공공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철도청은 돈벌이에 급급해 전국의 광장을 ‘민자’에 넘겨주고 말았던 것이다.


동인천역의 경우, 수도국산까지 훤히 바라다 보이던 스카이라인을 가로막는 ‘민자역사’ 건립을 허가해 주었다. 그 결과 답답함은 물론이거니와, 정작 역의 입출구도 찾기도 어렵게 됐고, 이용하기도 꽤 불편해졌다. 정거장에 들어가면 에스컬레이터 따위를 안 타도 어렵지 않게 곧장 기차를 탈 수 있던 편안함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주객전도도 정말 유만부동이다. 겉만 보면 시설이 다양해진 것처럼 여겨지나 사실은 그만큼 불편해진 것이다.


그런 판에 오래 전부터 역명과 지명이 생뚱한 인천 지역의 역 이름들을 고쳐 달라면 손사래를 치던 철도청이 아닌 밤중에 ‘김유정역’을 들고 나왔으니 인천사람들로서는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의 요구는 역을 빌어 돈벌이를 하자는 게 아니라, 애초에 철도청의 잘못된 작명 때문에 지역적 정체성을 훼손 당하고 있으니 이를 시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해 왔으니, “전국 636개 역 대부분이 지명을 역명으로 쓰고 있다”는 철도청 관계자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얼토당토않게 ‘제물포역’이 무언가? ‘제물포’는 원래 지금의 인천역 일대를 가리킨 포구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종종 타지역 분들이 ‘제물포역’에 내려서 바다를 찾아 헤매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였던 것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철도 기공식을 거행한 곳이 현 ‘도원역’ 부근일진대, 경인선 개통 당시의 역이름인 ‘우각동역(牛角洞驛)’을 살려 이를 ‘한국 철도 발상지 역’으로 기념한다면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것인가. 관광자원이 되고도 남을 아이템인 것이다. 그러나 철도청은 자신들의 역사인 철도사(鐵道史)조차 망각한 채 왜식 그늘(桃山町)이 배어 있는 ‘도원역’을 택했던 것이다.


철도청은 차제에 인천의 잘못된 역 이름도 스스로 바꿔주기를 바란다. ‘인천역’을 ‘제물포역’으로 고쳐 제자리를 찾아주고, 인천의 동쪽에 있지도 않은 ‘동인천역’은 그 옛날 싸리나무고개의 정취를 살려 ‘축현역’으로, ‘도원역’은 1906년 이전 이름 그대로 ‘우각동역’, 또는 우리 나라 최초로 고유어 역명인 ‘쇠뿔역’으로 고치는 게 마땅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철도의 발상지인 인천을 제쳐놓고 한국 ‘철도 시발지 비’를 엉뚱하게 노량진에 세우거나, 철도박물관마저 철도와 별 인연이 없는 경기도 의왕시에 세운 것 같은 우를 철도청이 계속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든 우리는 중요한 생활 공간의 하나인 역 이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아왔다. 결코 그까짓 역 이름 하나쯤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니 인천 길거리에 ‘풍신수길’을 떠올리게 하는 왜식 지명인 ‘도산(桃山)1길’이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내걸려 있어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과거사를 청산하자는 목소리를 하늘에 높이고 있는 요즘이다. 역사를 역사로 배우고, 이를 제대로 새기지 않는다면 참으로 버거운 일들이 안팎으로 벌어질 것 같다.


 2004 10 07일자 1판 4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