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당시 국내에는 6개 공업지대가 있었다.
흥남·길주·청진·성진을 포함하는 '북한공업지대'를 비롯해 '서선(西鮮), 삼척, 호남, 남선(南鮮)공업지대'와 서울·인천을 포함하는 '경인공업지대'가 그것이다.
1930년대 인구 60여만명의 서울과 10여만명의 인천을 잇는 약 30Km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부평구에는 또다른 군국의 화신들인 국산자동차(주), 디젤자동차공업, 경성공작(주), 동양제강, 부평금속공업(주), 동양정공, 부평와사공장, 조선베아링, 홍중상공(주) 등 대규모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임립하여 검은 연기를 어지럽게 내뿜고 있었다.
특히 1939년 일제가 해외에 유일하게 세운 '조병창(造兵廠)'에서는 소총, 총검, 박격포, 야포, 탱크, 포탄, 화염 방사기를 비롯해 조선기계제작소 인천공장을 감독해 잠수정까지 제작하면서 무기 제조의 본고장으로 부상했었다.
그들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가 딸리자 무자비한 공출(供出)을 자행했는데 국내는 물론 중국 각지에서 거둬들인 숟가락, 종, 엽전 등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집결시켜 조병창을 비롯한 여러 공장에 산더미로 야적했었다.
현재 시립박물관 현관에 전시돼 있는 청대 종(鐘)들도 광복 직후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이 조병창에서 가져온 것이고, 한때 산곡동 들판에는 그때 파묻힌 값나가는 엽전을 캐느라 천 수백여 시민이 모여 장사진을 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일제가 정밀 무기 제조용으로 모았던 금괴(金塊)를 반출치 못했을 것이라며 시(市)에 그 채굴 허가원을 낸 이도 있다고 한다.
그간 일본군 관련 매장 황금설(黃金說)이 모두 허탕이었지만, 일확천금 얘기는 늘 화제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조우성의 미추홀
황금설(黃金說)
형과니
2023. 4. 24. 08:24
황금설(黃金說)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4-21 02: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