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대제학의 상여길

형과니 2023. 4. 25. 09:11

대제학의 상여길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5-13 15:25:16


대제학의 상여길


서구 경서동의 섬피뚝길-지금의 골프장 진입로라고 한다. 세종때 대제학을 지낸 류사눌(柳思訥)의 장례행렬때 축조한 길이라고 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생전에 잡아두었던 호두산에 산소를 쓰는데 길이 좁아 큰 상여가 지나갈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넓혔다. 섬피뚝길이라 불리는 것은 길을 넓힐때 섬피에 흙을 담아다 메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섬피란 옛날 곡식을 담아두던 자루였다.


류사눌은 이곳 경서동 출신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성장했다. 계양산 기슭 만일사에 들어가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고 경전에 밝았다. 조선조 태조2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정언 병조정랑을 지내고 태종7년 문과중시에 합격해 장령이 되었다. 태종9년 집의로서 민무구·민무질 형제를 탄핵하다가 황해도 안악으로 유배되었다. 민무구 형제는 태종의 처남이니 원경왕후의 동생들이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좌사간 좌부대인 등을 지냈는데, 태종16년 도승지로서 소합유를 진상하다가 잘못을 저질러 다시 안악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 경상도관찰사 함경도순무사 등을 역임하고 세종5년 한성부윤으로 경기도관찰사를 겸임했다. 세종10년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진하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좌군총제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이후 박연과 함께 ‘아악보’를 완성했다.


용흥가와 진작가사를 지어 올리는 등 맹사성 박연 등과 함께 조선초기의 악학 정리에 공로가 컸다. 시호는 문숙이며 오늘날 그의 묘소가 경서동 금산에 소재하며, 인천시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전에는 훗날 설치한 상석과 문인석 성구용이 찬한 묘비가 있다. 그리고 묘역에는 문화 류씨 일문의 묘 수기가 있다.


보도에 따르면 류사눌묘 인근의 그린벨트가 어지럽다고 한다. 폐타이어가 쌓이고 대형차량들의 주차장화를 비롯해 비닐하우스 등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이곳 일대는 차량의 출입조차 없던 한적한 곳이었다. 해안방조제가 축조되고 출입이 수월해지자 시끄러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문화재가 빈약한 인천인 만큼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빠른 정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