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왜색표지판

형과니 2023. 5. 5. 00:53

왜색표지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0 15:02:55


 

   왜색표지판

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의 동명(洞名)을 '정명(町名)'이라 했다. 그것들을 일별해 보면, 세상에 이런 법도 있을까 싶다. 아무리 식민지라 해도 그처럼 완전 일본식으로 땅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식 강요였다.

'인천부사(仁川府史)'조차 "본정(本町) 또는 산수정(山手町) 같은 (內地의) 명칭이 경성, 목포 등에서도 (仁川에서처럼) 똑같이 쓰였다는 것은 획일적 모방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일례로 흥미 깊게 생각한다."고 할 정도니 할 말이 없다.

오늘날 일본의 소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지명을 그들은 '언어의 쇠말뚝'으로 인천에 깊이 박아 놨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약과였다. 더 고약한 것은 군국주의 화신(化身)들의 이름을 뻔뻔스럽게 정명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청천동은 육군 중장 천상(川上)을 딴 천상정(川上町), 구산동은 총독 이등박문(伊藤博文)을 딴 이등정(伊藤町), 검암동은 해군사령관 과생(瓜生)을 딴 과생정(瓜生町), 도원동은 풍신수길 때를 기린 '도산시대(桃山時代)'를 딴 도산정(桃山町)이었다.

군함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예도 있다. 삼산동은 삼립정(三笠町), 가좌동은 천간정(淺間町), 가정동은 천대전정(千代田町), 백석동은 운양정(雲揚町), 서창동은 낭속정(浪速町), 선린동은 미생정(彌生町), 옥련동은 송도정(松島町)이라 했다.

인천시가 오는 11월까지 도로 표지판을 일제히 정비키로 했다고 한다. 잘못된 한글ㆍ영문 표기뿐만 아니라 차제에 '밀레니엄 길' 같은 생뚱맞은 것에서부터 '도산(桃山) 1길', '송도(松島) 2길' 같은 식민지 잔재도 반드시 떼 내야겠다. 일본인들이 이를 보고 '너희가 그러면 그렇지 별수 있냐?'며 코웃음 칠까 심히 걱정된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