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에 피어난 석류꽃과 촛불
배다리에 피어난 석류꽃과 촛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12 10:51:12
배다리에 피어난 석류꽃과 촛불
김철성 자유기고가
손때 묻은 책 한권이 있다. 간디 선생이 쓰고 함석헌과 진영상 선생이 옮긴 <날마다 한 생각>이다. 삶의 길을 잘못 들어 헤맬 때마다 수시로 꺼내든 책이다 보니 누더기가 다 됐지만, 내용은 여전히 진리의 빛으로 가득하다. 하수상한 세상인 요즘 몇 구절 되새김질 해본다.
책 머리말에서 함석헌 선생은 “간디는 결코 정치의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사람이었다. 그는 참이 하나님이라 하리 만큼 철저하고 거짓이 없었다. 그러므로 참에 반대된다면 인도를 버리기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인도를 건질 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발문에서 양희규 선생도 이렇게 말했다. “유혹에 넘어지고 희망을 쉽게 포기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간디 선생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자문한다. 대답은 간단하다. ‘진리이면 가고 비 진리이면 가지 말아야지’ 나는 더 이상의 변명이나 정당화를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뭐가 진리이고 뭐가 비진리일까?
간디 선생은 공자 말씀을 인용하면서 “질서가 잡힌 나라에서는 그 발전을 富(부)로 측정치 않는다”라고 하면서 “국민과 지도자의 순결”이 국가의 진정한 재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조한다. 정말 우리는 “큰일을 생각하지 말고 선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봄꽃 지고 온통 신록으로 물든 계절이 왔다. 그런 자연속에서 오직 붉은 것이 하나 있다. 석류꽃이다. 5월 중순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지금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다.
필자의 일터인 농업박물관 관람객 중 한 분이 피어난 석류꽃을 보고 일러준 글귀가 있다. “萬綠摠中 紅一點”(만록총중 홍일점)이라, ‘만물은 모두 녹색인데 그중 붉은 것이 하나 있다’라는 뜻으로, 붉게 피어난 ‘석류꽃’을 두고 한 얘기였다.
이 글귀를 음미하다가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생각이 미친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大慈大悲(대자대비)한 불빛이 촛불이다.
촛불은 왜 타오르며 빛나고 있는가. 그건 ‘잘못, 거짓, 헛것, 무지, 오만, 비진리’ 같은 것들을 남김없이 태워 버리려는 순결의 몸짓은 아닐까?
세상이 온통 거짓, 어둠으로 가득할 때 오직 홀로 석류처럼 붉게 피어나 타오르는 촛불. 그런데 이번 촛불 시위의 주동자는 어느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닌 ‘자발성’이라는 것이 놀랍다. ‘자발성’이야말로 참된 국민(시민)정신이며 운동이다.
타오르는 있는 불빛이 어디 광우병 소를 반대하는 촛불시위 현장뿐이랴. 이 순간 인천의 배다리에도 석류꽃은 붉게 피어나고 있고, 촛불도 활활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청년 장한섬은 외쳤다. “계양산이 인천의 자연생태계의 허파라면, 배다리는 인천 문화계의 허파이다”라고.
시방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고인 인천의 배다리는 산업도로 공사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그랬다. 배다리의 생명을 살리려는 자발적 시민들의 몸짓이 석류꽃이 되고 촛불이 돼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산업도로는 말 그대로 부의 극대화를 상징한다. 배다리의 여린 들꽃 같은 문화생태계를 뭉개가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부는 과연 어떤 부일까?
우리는 결코 배가 주린 게 아니라, 미친 소처럼 날뛰다 퍽 주저앉고 말 헛된 욕망에 주려있는 건 아닐까?
슬프도록 눈부신 신록 앞, 석류꽃이 붉게 피어나는 계절에 생각해 본다.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죽음, 파괴, 욕망’이 아닌 ‘선과 진리와 생명’의 길이 맞긴 맞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