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이민사박물관

형과니 2023. 5. 8. 09:49

이민사박물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6-23 16:04:34


오광철의 전망차


이민사박물관


여러 해 전 재일인천인회로부터 여러 장의 인천시내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재일인천인회란 광복 전 인천에서 살다 돌아간 일본인들의 모임이며, 지도도 그들이 살던 시절의 것이다. 당시의 관서 상점 학우들의 집까지 표기되어 있으며, 서점 담배가게 유리점 등도 조밀하게 그려넣고 있다. 그런데 자유공원 일대와 송학동은 엉성하게 되어 있다. 지금의 인성여고가 자리한 옛 메도디스트교회와 지금 제일교회 자리에 ‘우로고’라는 표시가 있을 뿐이다.


우로고란 당시 일본 고급 요정의 이름이며 일본어로 물고기의 비늘이란 뜻이다. 하필이면 요정의 이름이 생선 비늘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밀한 비늘 무늬도 ‘우로고’라고 했으니, 요정의 상징 문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다. 아무튼 ‘우로고’의 전신이 1902년 하와이 이민의 미국인 책임자 데쉴러의 저택이었다. 이 사실은 1959년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에도 명기되어 있으며, 2004년 오인환 교수의 ‘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에서도 규명되고 있다.


오 교수와 공정자 교수 부부 공동명의로 간행한 동 책자 제2장은 데쉴러와 그가 거주했던 저택을 규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데쉴러의 모습을 1897년 경인철도 착공식의 사진에서 찾는다. 즉 사진 속의 미국인들이 미국공사 알렌과 미국인 경영인 타운센트, 그리고 데쉴러일 텐데 검정색 차림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 데쉴러일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앞으로 검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 교수는 집필하던 시기 이민선의 출발지 인천을 자주 찾아 각계 인사들과 접촉, 자료 제공과 자문을 받았다. 기독교 관계자, 인성여고, 교사, 향토사학자, 언론인 등이며 신문사 편집국에도 들렸다. 하긴 오 교수의 인천방문은 이미 그 이전인 기자의 신분으로 하와이 대학에 유학하던 시절인 70년대부터였다. 그때에도 신문사를 방문, 외국의 지방신문 형편을 소개하면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었다.


이민한세기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월미도에서 문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아직도 분명치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