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방시장
병방시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13 07:47:10
'덤' 이 있고 '정'이 넘치는 곳, 병방시장
'위기를 기회로' 시장골목마다 생동감 넘실
한 발자국만 떼도 볼 것 많고, 주머니가 가벼워도 먹을 것이 많은 곳... 시장에 가면 부담이 없어 좋다. 대형 할인마트처럼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쇼핑카트를 몰며 경쟁하듯 조급하게 물건을 사야하는 불안감이 없어 좋고, 양손에 검은 봉지 하나씩 달랑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느린 발걸음으로 여유롭게 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할인마트와의 경쟁에서 대부분의 재래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쇼핑건물에 가격파괴, 노 마진을 앞세우는 대기업들의 공세에, 재래시장은 물론 동네 슈퍼마켓마저도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IMF때도 살아남았지만...
‘병방시장’은 재래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인천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1991년, 계양산 밑자락에 점포가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이후 140여개의 점포가 들어설 만큼 큰 시장으로 변화했다. 계산동 일대의 주민은 물론 가까운 김포 쪽의 시민들도 오가면서 병방시장은 늘 많은 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호환, 마마보다도 더 무섭다'는 그 혹독한 IMF때도 살아남았던 이곳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때는 7년 전, 계산동에 택지개발이 시작된 직후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함께 월마트, 그랜드마트, 까르푸, 홈플러스 등 낯익은 대형 할인마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병방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기회로! 시장 개혁에 나선 상인연합회
위기의식은 상인들을 뭉치게 했다. 병방시장에 터를 잡고 있는 상인들 스스로 힘을 모아 자신들의 터전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대로는 안 된다. 사람냄새 풍기는 장터만으로는 이제 경쟁이 힘들어졌다. 손님들이 거리낌 없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생선사시면 미더덕을 '공짜'로 드립니다.
병방시장의 개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병방시장 상인연합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자구책이 마련되었다.
쌀가게, 가구점, 그릇가게, 정육점 등 각 가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깨끗한 인상을 주기 위해 거리를 정돈했다. 대형 할인마트에 뒤지지 않는 가격, 품질 유지를 위해 상인들 간의 결속력은 더욱 다져졌고, 때마다 각종 행사를 열어 손님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지난해, 오리고기 닭고기 파동으로 시장이 한참 술렁일 때는 계양구새마을지회와 연계해 ‘닭고기 무료시식회’를 크게 열기도 했다. 닭 강정과 튀김을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우리 고기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병방시장은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에 보통 수천명에 이르는 손님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다.
친정어머니의 손맛처럼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담긴 반찬, 잃었던 밥맛이 절로 도는듯 하다.
생동감 넘치는 병방시장의 거리
병방시장 상인연합회의 개혁활동은 꾸준히 진행 중이지만 ‘덤’이 있고 ‘정’이 넘치는 시장 분위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은 재래시장이 다른 곳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가장 큰, 무형의 자산이기도 하다.
순대 떡볶이를 사먹으면 어묵 국물 한 그릇이 덤으로 올라오고, 생선 한 바구니를 사면 미더덕 한 봉지가 공짜로 손에 들려지는 곳, 이곳 병방시장 안에선 어딜 가나 주인장들의 푸근한 인심마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무게에 맞춰 깍쟁이처럼 적어놓은 부위별 포장육과 달리 집안에 누구 생일인지 누구 제삿날인지 물으며 필요한 부위를 건넨다. 오늘 들어온 맛난 고기가 있다며 한점 더 올리는 손길이 고맙다.
병방시장의 거리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가운데 도로를 중심으로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밝은 간판들이 손님들의 행렬을 반기고, 건물 입구나 계단 옆 곳곳의 좌판에는 주인들과 손님들이 가격 흥정을 놓고 구수한 입씨름을 벌인다. 포장마차 앞 핫도그, 튀김 냄새의 유혹은 엄마 손을 잡아끌며 어린 손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침내 장바구니가 두둑해질 무렵이면, ‘안녕히 가십시오. 병방시장입니다’ 란 현수막 앞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다.
상인들 스스로 나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곳, 대형 할인마트와의 경쟁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곳, 병방시장은 재래시장도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비아그라(?)시금치, 부추, 연근, 브로컬리, 양송이버섯, 대파...우와많다!
시민기자 한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