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고 다시 세우는 '도시성형' 속 옛 거리는 다행히 살아있습니다
헐고 다시 세우는 '도시성형' 속 옛 거리는 다행히 살아있습니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14 07:37:26
헐고 다시 세우는 '도시성형' 속 옛 거리는 다행히 살아있습니다
김학균(시인)
왜 가신분들이 그립냐면, 시주(詩酒) 화주(畵酒)의 막연한 추억보다는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속에서 군살이 없고 여백을 살려내며 또한 충분히 사용해 잔상을 갖게하는 그 배려가 좋다는 것이며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끼며 쓴, 먹그림 같이 질박하게 살다간 그들이기에 더욱더 그립다는 것입니다.
걷고 있는 길은 개항기 여명에 맞물려 잠재적 역사 자산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는 하나 성형수술의 흔적으로 발로보고 눈으로 가기가 옛 같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인 듯 길은 살아있습니다. 전편에 멈춰선 곳이 중앙동 사거리, 공원 층층대를 올라가고자 하는 길, 경기후생병원(현 사법연수원)과 옛 세신공사(현 조선일보 지사) 그리고 얼마전까지 마사회가 있던 곳.
도료상점인 이 곳은 예총 건물로 임시 사용되었다.
이 네 모퉁이 길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날 수 밖에 없는 길이였습니다. 옛 시청가는 길에, 외항선원의 검진을 위한 후생병원하며 아래쪽으로 '마로보시'(대한통운)와 미군소방서, 경기도 경찰국, 윗쪽으론 공원가는 길로 갈라지는 요충의 땅이 일반적인 요인이고, 한때나마 어려운 시절(61년 5·16군사혁명전) 없어진 경기매일신문사 건너편 '병사구사령부'였던 건물에 인천시 문화회관을 열고 '경기예총'도 간판을 걸었으나 여의치 않아 9대 인천시장 김진두에 의해 이 4거리 윗쪽(중앙동3가 3번지) 민가 2층 건물을 매입 문총인천지부와 인천문화원 그리고 예총이 입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서너평의 좁은 공간에 말만 문화회관이지 사무국 직원이 상주, 업무를 할 공간없이 난감할 때 지부장(이종화)이 원장으로 경영하던 '공립병원'으로 들고나는 업무처리의 연속, 초창기 예총(경기)은 참으로 지난했었습니다. 후론 10대 유승원 시장의 배려로 시립도서관(율목동) 2층을 사용케 되어 숨통 트이긴 했어도 시민들의 발길이 뜸한곳으로 문화공간의 몫을 다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공립병원(원장 이종화(사진가))이 있던 그곳은 연립주택이 들어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으며 민가 2층을 매입하여 '회관'으로 쓰고자 했던 그 시절 도료상회 건물은 옛모양 그대로 숨죽이며 초라하게 남아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열까지 그대로 있길 원할 수는 없겠지만 아쉬움이 그지 없습니다.
어느 사진집의 저자가 쓴 서문에는 '보톡스'를 놓고 '박피' 수술을 받은 도시 재생사업으로 사라져 가는 그것들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보톡스'에 '박피' 그것뿐이겠습니까. 아예 흔적없이 헐어버리고 다시 세우는 성형수술이 도시 건물에서도 만연하고 있으니 옛것이 좋다는 말이 무색합니다.
아직 그 사거리에서 밭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인천을 주제로한 시작폼을 남긴 시인들도 많지만 조병화 시인만큼 많이 남긴 시인은 없지 싶습니다. 1954년 3월 26일 발간된 제4시집<인간고도>가 이 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 시집은 김양수 선생(당시 21세)에 의하여 원고정리 인쇄, 교정이 이루어짐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입니다. 서울의 <신호장> 출판사 간행이지만 인천의 <한영사>에서 인쇄하여 김성민(金聖民)씨의 출판으로 되어 있는 시집으로 <한영사>는 바로 이 거리 (마사회건물)에 있었던 인쇄공장으로 업주가 <김성민>씨인 것입니다.
지금은 언감생심 출판사 이름만 빌린다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 시절은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한영사 인쇄소> 김성민씨 덕택으로 나온 <인간고도>는 소설가 황순원의 사회로 소공동 서울 치과대 구내 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었습니다. 47년 9월에 인천중학교로 와 햇수로 3년(17개월) 후 서울 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긴 조병화시인이 완전히 인천을 떠난것은 50년대 중반이었으니 <인간고도>는 이 사거리<한영사>에서 나왔을법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시인이 살던 집은(부인의 산부인과병원) 어림잡아 200m 아래 관동쪽 이었습니다.
조병화 시집 인간고도 를 인쇄한 한영사가 있던 곳
(현재 마사회건물).
하늘이 감추고 보호한 땅, 이곳을 걷는 기쁨은 색이 다가오고 삶과 영감이 다가오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길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 하는 것이죠. 길도 저마다의 운명이 있기 때문에.
어쩜 이 길들은 슬픔이 꽉 찬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안동 다국적군들이 점유하는 철조망의 경계 이쪽, 걸어가면서도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외로운 섬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공림병원(원장 이종철)이 있던 터 (연립주택으로 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