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신외과병원' 중앙에 위치 해안동서도 물 길으러 발길

형과니 2023. 5. 11. 10:33

'신외과병원' 중앙에 위치 해안동서도 물 길으러 발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29 09:19:00

 

단수 때면 병원우물이 동네 보물

/흐르고 싶은 인천-길에서 묻다/ 흔적들4

 

'신외과병원' 중앙에 위치 해안동서도 물 길으러 발길

한상억 시인 송별회장 진흥각 제일은행과 자리교환

 

인천인으로 인천을 사랑한 사람은 단 한사람 그것도 아주 옛날 (1653, 효종4)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 그 누구도 없을 것 같다. 57세 때에 지은 <진택명>이란 글속에 "7개월간 서울에 있다 인천으로 가니 / 고향으로 돌아온 것 내 소원을 다한 셈요"라고 썼으니 애향심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것도 7개월간의 외지생활에 돌아온 고향, 소원을 다 이루었다니 말이다. 물론 선산과 종회가 인천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천 출신이라는 자부심의 발로, 우리도 배워야하며 긍지를 가져야 될 것이다.

 

신외과병원(원장 신태범)1980년까지 있었던 터에 현재는 거련 빌딩이 서 있다.

 

효성 또한 지극하여 조기로 담근 젓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긴 즉 그의 어머니가 조기젓을 끔찍이 좋아하셔서 그 젓을 볼때마다 생각이 나 먹을 수 없었다는 효성의 극치.

조기젓, 문조 우문국 선생이 끔찍이 좋아했던 찬중에 찬이다.

 

홍예문길에서 중앙동 4가 길 <인천 한세기>를 펴내시고 의학박사이셨던 신태범 박사의 '신외과병원'을 끼고 돌아선 허름한 백반집, 문조 선생의 단골집으로 간판은 '인천집' 이집의 조기젓이 그를 붙들어 매 놨었다. 칼칼하고 짭조름한 간을 좋아했던 식성 또한 강골의 문조선생을 잘 대변했다.

 

식사시간 한시간에 말꼬리 풀어놓은 시간은 두시간, 오늘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그것이 다 역사의 줄거리였다.

이왕지사 나왔으니 보따리 풀지않을 수 없는 '신외과병원' 이야기 좀 해보자. 어느 병원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자들이 기다리는 대기실이 있게 마련이지만 '신외과병원'은 환자들보다 중앙에 둥그런 우물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별스런 기억이 지금껏 생생하게 살아온다. 투박한 송판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뚜껑을 쓰고있는 그 우물은 수돗물이 단수되는 3~4, 길게는 일주일동안 동네의 공동우물로, 멀게는 해안동에서도 물을 길러오는 보물이었다.

 

20년대는 히라노(平野) 상점 건물로 있던 것을 1942년에 신태범 박사가 매입하여 병원을 개업 수많은 환자를 돌보셨던 '신외과병원', 80년 이후 흔적을 찾기 어렵구나.

 

여로, 앞만보고 걷던길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는 길 어떤 연유로 뒤를 돌아보냐면, 살아있는 내가 오는 길 영혼이 뒤따라 오지 못하고 서성댈까봐. 뒤돌아 본다는 노사백들의 말처럼 서너명이 함께 걷는 길은 두세명씩 떨어져 걷게 마련,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편안한 얼굴이 아니었고 안경쓴 눈에서는 축축한 비가 감도는 것 같았다. 먼 이국으로 이민가시기 전 송별회장의 한상억 선생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석별의 정을 뚝뚝 흘리셨다.

중앙동 4가의 '진흥각' 이층은 많은 문화예술계의, 사람들로 붐볐다.

 

외아들(한충의, 46년생)이 금성사 미주지사에 근무타 아주 눌러앉은 연유로 이민길에 오르신 이록(二錄) 선생은 지병인 심장병 치료가 두 번째 연유지만 토박이 인천(강화 양도면 출생)인이 떠난다함이 얼마나 아쉬웠을까.

 

작곡가 최영섭씨와 동향이며 <그리운 금강산>을 작시하여 곡을 붙여 부르니 곧 국민가곡이 되었고 분단의 실정에서 영산(靈山)을 찾고자 하였으니 통일의 염원을 시로써 푼 평가를 얻지 않았나 싶다.

 

한상억 시인의 송별회장이었던 진흥각과 제일은행.

 

87년에 떠나 5년뒤 방문길, 인천을 다녀간 (9210) 그 다음 달 걸어 가신 길이 저승, 참으로 슬프다.

'진흥각' 중화요리집으로 많은 식객(食客)들이 찾는 곳으로 본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그 옆 '제일은행' 자리가 진흥각의 자리였으나 제일은행이 길 모퉁이에 앉고 싶어 거래상 맞바꾸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남아있는 중앙통의 일본집들. 그 중에서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후루다 양품점'은 째즈카페 '버텀라인'으로 면모를 바꾸고 그 맞은편 '조선식산은행' 건물로 썼던 (지금의 중화루) 그 터는 해병 헌병대가 버티며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권투구락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 옛날이여.

 

/김학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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