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관(愛館)
애관(愛館)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03 14:49:05
애관(愛館)
조우성의 미추홀
하와이 이민 90주년 취재차 호놀룰루에 갔을 때였다. 교민들에게 왕년의 톱스타 조미령 여사가 현지에 사신다는 말을 듣고 가 뵈었다. 인천서 왔다니까, 조 여사는 다짜고짜 이렇게 되물었다. "애관극장, 아직도 있어요?"
영문을 몰라 되물었더니, 처녀 시절에 악극단을 따라 애관극장 무대에 여러 번 섰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애관극장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연 신식 공연장이래요." 내 말에 이번에는 조 여사가 놀라는 눈치였다.
'신극사(新劇史) 이야기'란 책을 쓴 연극인 안종화(安鐘和) 선생도 애관극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직 '애관'이 '축항사(築港舍)'란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신파극 '육혈포 강도'로 명성을 날렸던 이성구 선생과 함께였다.
"혁신단 이성구 단장의 권유로 인천 유지 김봉의가 용동 마루턱에 세운 극장이 '축항사'이며, 목재 건물로 건평이 한 칠십 평 될까 말까 했고, 객석 정면에는 다락같이 2층을 달았다."고 선생은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
그러나 생전에 구수한 향토 야화집(野話集) '인천석금'을 펴낸 고일(高逸) 선생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1911년경의'축항사'보다 먼저 정치국이 용동에 지은 벽돌창고 극장 '협률사(協律舍)'가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지역 문화의 뿌리를 찾는 한 방편으로서도 '협률사-축항사-애관'으로 이어지는 인천 극장사(劇場史)가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돼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최근, 애관을 연극 전용관으로 만들자는 참신한 주장이 문화계에서 나왔다. 이를 계기로 재벌들이 초토화시킨 지역 고유의 극장 문화가 되살아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