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고추 좋아하는 시민

형과니 2023. 5. 13. 00:04

고추 좋아하는 시민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8-25 00:55:41

 

오광철의 전망차

고추 좋아하는 시민

 

교장으로 정년한 친구를 만났더니 아침에 부부간의 다툼이 있었단다. 원인은 고추말리기였단다. 자기가 담당이었는데 전 같지가 않고 힘에 부쳐 짜증을 부렸더니 부인이 나무라느라 사단이 되었단다. 노부부가 얼마나 먹는다고 고추말리기를 하느냐고 했더니 아들 딸네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은 자식 키워 장가 시집 보내도 김치며 고추장을 담가 보내야 한다. 그러니 고추말리기도 쉽지는 않다. 비라도 질금거리면 내 널었다가 거두기를 거듭하게 한다.

 

하긴 고추 농사는 말리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늦장마가 들면 하는 수 없이 군불이라도 지펴 방바닥에 널어놓는데 물컹물컹 썩는 놈이 계속 나온다. 지금은 아예 안마당에 고추말리기 비닐하우스를 세우거나 농업용 건조대라는 것이 있어 힘 안들이고 말리지만 어찌된 일인지 검정빛이 돌고 맛이 덜하여 값도 좀 떨어진다고 한다. 정성이 덜 간 때문은 아닐까.

 

요즘 집집마다 고추 말리기로 분주하다. 안마당이든 지붕이든 붉게 물들인다. 뭐니뭐니 해도 햇볕에 말린 태양초여야 한다며 야단이다. 지금은 시골보다 도시가 더 극성인 듯싶다. 아파트 옥상에도 주차장에도 빈자리는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차지가 된다. 붉은 고추는 우리나라의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여기 저기 붉은 고추가 타오를 때 그것에서 가을의 정경을 짙게 호흡한다. 그것을 보면서 어렸을 적 향수도 느낀다. 할머니를 돕는다며 고추를 만진 손으로 눈을 부볐다가 매운 맛에 소스라치고 참았던 오줌을 누겠다며 그것을 만져 혼이 났었던 경험도 생각난다.

 

며칠전에 신문에서 고추를 말리는 장면과 서울시청앞 광장에 등장한 고추터널 사진기사를 보고 새삼 빗속에도 가을이 영글어 가고 있었음을 느끼면서 한 십여년전 인천시민이 유독 고추말리기를 선호한다는 보도가 생각났었다. 보도의 내용으로는 타지역과 비교하여 농산물 시장의 고추 거래량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었다.

 

인천시민이라고 특별하게 고추를 많이 섭취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아들 딸에게 보내는 집이 많아서 부지런을 떠느라 그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