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의 향수
음악다방의 향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25 01:03:18
시·낭만 흐르던 음악다방의 향수
1960년대 말 용동·동인천·신포동 등 유행처럼 번져
대한서림 5층은 과거 '별' 음악감상실 자리다. 이곳에서 시낭송 대회가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나 울울창창한 대나무길, 서늘한 바람이 소쇄소쇄 이야기하며 짙은 이끼로 가득한 바람길이면 더욱 좋겠지만 반복해서 걷는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매일 보는 풍경 속에서도 사람 냄새와 정감어린 원림(園林·집터에 딸린 숲)이 보이는 도시는 그리운 곳, 탈출하고 싶은 곳,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며 떠났으나 떠나지 못한 곳, 눈물겹게 아름다운 곳으로 마음속의 도시는 길이 있어 좋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 오르막 길은 상기증(上氣症)을 완화시키고 내리막 길은 욕망과 욕구를 절제하게 만드는 걷는 자의 도(道)이다.
길에서 도(道)를 닦으며 길을 묻자. 싸리재 길은 유년시절서부터 느낀 나의 제일감(第一感)은 인천의 부가 모여있는 곳이며 있음과 없음의 대치현장 그 자체 였다. 아마 그래서 인천 최초의 백화점 '항도'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항도 백화점! 수많은 문화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알려졌지만 문인들의 행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50년대의 동인활동이 왕성한 시기를 지나 68년에 탄생된 '타원' 문학동인의 시화전을 열고 기억속에서 사라진 백화점으로 가장 규모 있고 전시장 같은 곳으로 평가된 곳.
시인 랑승만을 고문으로 둔 타원문학 동인은 이석인, 김규창, 이명복, 김학균 등이 주축을 이루며 활동 했었다. 68년도에 열렸던 '촛불 문학의 밤'을 축현초등학교(현 학생문화회관) 강당에서 개최하여 문화의 갈증 속에서 훈훈한 정감을 생성시킨 행사로 주부생활 편집장을 맡고 있던 랑승만 시인의 시 <찔레꽃>이 낭송되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듬해 용동거리 '인하예식장'에서 열린 '타원문학의 밤' 행사 역시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나 인천의 동인 역사가 그러했듯이 이 또한 단명, 사라지고 말았다. 이 행사의 뜻밖의 일이였다고 기억되는 것이 있다면 인천에서(고향이 아님) '사파' 동인이였던 손재준 씨가 참석하여 주었다는 것이 추억에 남는 일이었다. 서울대 문리대 독어독문 출신으로 시를 쓴 그는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랑승만 시인의 등단에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서울 돌체다방에서 싸웠던 일화의 이야기를 그 때 들려주며 격려하던 따뜻한 분이다. 불만인 즉 54년에 결성된 그 '사파' 동인은 등단거부 운동을 벌여 왔던 중 랑승만 시인이 혼자 몰래(?) 등단케 되며 생겨난 싸움으로 웃음이 절로나는 다툼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간사였던 소설의 이정태(현 안산 문화원장), 시 김종철, 시 김영달 등은 등단했다는 소식없이 저서로 등단(?)된 작가들이다.
용동 인하예식장 자리. 타원문학동인회 문학의 밤이 열렸던 장소. 사진 왼쪽 건물은 1910년도에 건축된 인천흥업주식회사 자리. 인맥과 학맥 그리고 여타한 연고의 끄나풀을 동원한 등단제도에 불만을 가졌던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발상의 동맹이기는 하지만 "너희들 실력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뭐가 잘못이냐"고 대꾸하던 시인 랑승만의 승리로 끝났다는 시절의 모습들 정감이 어린다.
세상에는 별일도 많고 별스런 사람도 많지만 히말라야 동굴 속에 사는 인도의 구르 스리 오도빈도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말인즉, "이상적인 도시는 인간 개개인의 가슴속에서 실현돼야 한다. 서로의 가슴을 향해 난 길, 그 길 밖에는 이상적인 도시로 가는 길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가능성이 집약되고 뭍의 문화와 물의 문화가 접점되어 이데올로기 대치의 현장 인천은 동해 일출보다는 서해의 낙조를 보고 우는 사람을 더 사랑하는 곳으로 갯벌의 연상작용이 있어 좋다.
용동, 권번이 있었고 한창 번화의 거리로 이름을 들썩이던 곳, 방석집(?)이 즐비하던 시절은 어딜가고 졸박하니 오므라든 거리를 내려오면 동인천(축현역), 잊으신 물건없이 안녕히 가라던 기차 안내방송을 뒤로 하고 개찰구를 나오면 첫눈에 들던 '별 음악 감상실'(현 대한서림. 5층) 한달에 한번 열리는 시 낭송대회, 저녁이면 입추에 만원을 이루었던 그 행사는 조한길 시인이 주도하며 한상억, 랑승만 등 문단 윗 선배들이 심사했던, 60년대 말 참으로 좋은 행사였다.
음악과 시가 어우러지는 그런 행사 이제는 눈 헹구고 보아도 없으니 옛날 이 좋다는 말 왜 안나올까. 덩달아 시작된 음악다방의 유행은 동인천 '미담'에서도 이루어졌으며 신포동 동방극장 지하의 '비엔나 음악감상실'에서도 이어졌지만 세속에 묻혀버린 옛 이야기, 뇌리에 포박해 둔 채 텅빈 충만감 뿐이구나.
아! 용동을 벗어나기 전 <한 잎새의 울음>을 끝으로 펴낸 손설향 시인의 마지막 출판기념회가 '석정루'에서 열렸었구나.
흐르는 것은 어찌 물뿐이랴.
/김학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