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낙엽의 계절

형과니 2023. 5. 16. 00:11

낙엽의 계절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0-31 10:52:20


낙엽의 계절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 며칠이든지 헛노릇으로 여기면서도 공들여 긁어 모은다. 벚나무 아래 수북히 쌓아놓고 불을 붙이면 속으로부터 푸슥푸슥 타면서 푸른 연기가 모로 길게 솟아 오른다. 연기는 바람없는 뜰에 아늑히 차서 물같이 고인다. 낙엽 연기에는 진한 커피의 향기가 있다. 잘익은 개암의 맛이 있다. 나는 그 귀한 연기를 마음껏 마신다. 욱신한 향기가 몸의 구석구석에 배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갔을 때와도 같은 풍족한 만족을 느낀다. 낙엽의 연기는 시절의 진미요 가을의 마지막 선물이다.>

스산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가로수 낙엽이 우수수 쏟아진다. 아직은 잎들이 푸른데도 그야말로 ‘추풍낙엽’-어느새 낙엽의 계절을 맞는다. 낙엽을 생각하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가 떠오른다. 낙엽이라면 곧잘 “시몬아 나무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는 구르몽의 ‘낙엽’을 입술에 올리지만 이에 못지않게 떠오르는 것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이다. 그러나 낙엽을 모아 태울 만한 정원이 없는 도시 살림이고 보면 그것을 누릴 수가 없다. 혹여 그럴 만한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오염이니 뭐니 하여 시비거리가 되겠다. 천상 고전을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식물의 한해는 새봄에 잎이 돋아나 여름내 자라고 가을에 단풍져 낙엽되기까지이다. 발랄한 처녀들은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다지만 노인들에게는 인생의 무상을 느낀다. 이렇듯 젊은이와 노인의 느낌의 차이이다. 그런가하면 낙엽은 또다른 느낌을 준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은 소설 ‘마른잎은 굴러도’에서 낙엽을 일본이라는 외세에 시달리면서도 의연히 버티어가는 중국에 비유하고 있다.

일전의 신문에 인천대공원 산책로에 수북히 쌓인 낙엽 사진이 실렸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낙엽이 쏟아진다. 그것을 경비원이 연상 비질을 하느라 밟아볼 이파리 한잎 없도록 만든다. 그대로 있어도 좋을 것을 굳이 떨어질 때마다 쓸어낸다. 어느 누가 치우라고 그랬는지 이효석의 글에서처럼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 ‘헛노릇’인데도 말이다. 입동이 다음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