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은행나무 가로수
매 맞는 은행나무 가로수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1-17 00:54:31
매 맞는 은행나무 가로수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한 달여 전의 일이다.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길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옆에 있던 은행나무를 향해 2단 옆차기를 날렸다. 그랬더니 어린 아들의 손동작이 더 빨라졌고 2단 옆차기를 몇 번 더 하던 아버지도 함께 떨어진 은행을 주웠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면 부자간의 정겨운 모습으로 보아줄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도시의 한가운데, 도로변에서 그 부자의 모습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도로변에서 쉽게 만나는 은행나무 가로수는 봄에는 새잎을 내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거나 고운 단풍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듯하다.
도로변에 심어지는 가로수를 유심히 관찰해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가로수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한 쪽은 아스팔트 도로라 뿌리를 전혀 뻗을 수가 없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쪽 역시 포장이 되어 빗물이 잘 스며들지 못한다. 일견 인도쪽으로 뿌리를 뻗으면 인도블럭이 들고 일어나 큰뿌리가 잘려나가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차량이 다니면서 발생하는 강한 바람과 차에서 내뿜는 매연, 각종 먼지와 쓰레기들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또한 나무의 머리 위에는 보통 전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전선 아래까지만 자라야 하는데, 더 자랄 경우에는 무참히 가지치기를 당해 볼썽 사나운 꼴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멋진 가로수길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비쳐진다. 그러나 도시의 가로수 대부분은 커다란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도시공간 전체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가로수길을 만드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로수만 잘 정비되어도 도시의 경관은 크게 달라 보일 것이라 확신이 들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그러면 암·수나무는 어떻게 구분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열매가 달렸을 때 모조리 찾아 표시를 따로 해두면 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수나무는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가고 암나무는 수평에 가깝게 옆으로 퍼진 것을 보고 구분한다. 물론 100% 맞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에서 암나무를 전부 찾아 표시했으면 한다. 암나무를 찾아 수나무로 교체하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열매가 달리는 기간에 맞추어 공공에서 직접 사다리 등을 이용해 나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은행 열매를 채취했으면 좋겠다.
이웃한 부천시 원미구에서는 각 동 주민센터의 주관으로 44개 노선 6천169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은행 열매를 털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이 임의로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무훼손을 막고 은행 열매를 터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교통사고 위험도 사전에 예방하였다고 한다(인천신문, 10월23일자). 그리고 은행 수확물을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했다고 하니 인천시에서도 깊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면 가로수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일련번호에 따라 데이터를 축적하여 관리한다고 한다. 국내 여건상 가로수 관리를 하면서 외국의 사례를 따라 하기는 시기상조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은행나무나 감나무 등과 같이 열매를 다는 가로수는 특별히 관리될 필요가 있겠다.
2단 옆차기를 당한 나무는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새순 돋는 봄을 맞이하기를 기원해 본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깊어가는 이 가을에 은행나무 털이를 하는 것보다 예쁜 은행나무 단풍잎을 모아 책갈피에 꽂아 보는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