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교육현장 손돌목

형과니 2023. 5. 16. 07:34

교육현장 손돌목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1-22 22:18:22


교육현장 손돌목

김포시 대곶면에서 강화도로 건너가는 초지대교의 대명포구 상류에 덕포진이 있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의 격전장이던 강화도의 광성진과 마주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지난 17일 손돌공의 진혼제가 있었다. 이날은 그가 죽었다는 음력으로 10월20일이다. 손돌공이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공 손돌이를 이름이다. 묘비에는 舟師 孫乭公(주사 손돌공)이라 적고 있는데 옛어른들에게는 ‘사공 손돌이’라고 해야 익숙하다.

사공 손돌이에 대해서는 이런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 때이다. 사공 손돌이가 난을 피해 강화도로 향하는 임금이 탄 작은 배를 저었다. 배가 한 모퉁이를 지날 무렵 암초로 물결이 사납고 바닷길도 앞이 막힌 듯했다. 필시 흉계가 있으리라 의심한 임금이 손돌이를 참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면서도 물에 바가지를 띄우고 따라가면 뱃길이 트이리라 충언했다.

무사히 고비를 넘긴 임금이 자신의 경솔을 뉘우치고 손돌의 장사를 후히 치러주었다. 그러나 해마다 그가 죽었다는 음력 10월20일이면(양력으로 11월 중순) 영낙없이 초겨울 추위가 찾아온다. 이를 ‘손돌이 추위’라고 하며 손돌의 넋이 추위와 바람을 몰아오는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이때면 뱃사람들은 바다에 나가는 일을 삼갔다고 한다. 지난 주초 기온이 급강하한 것도 손돌이 추위로 연관지어 볼 만하다.

당시의 현장이 지금 강화군 용두돈대와 김포 덕진진 사이의 손돌목이다. 지형이 특이하여 물결이 험하고 물흐르는 소리가 흡사 폭포 같고 바다를 사이로 양안의 포대 배치가 기묘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양측에서 십자포화로 응전할 수 있게 한 형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어느 시기인지, 그리고 손돌이 실제의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몽골의 침입 때로 추측되므로 고려의 고종 임금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재 손돌공의 묘역과 진입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인근에는 교육박물관도 소재한다. 한낱 전설로만 여기지 말고 선인들의 방어현장 등 주말의 하루 일정으로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가족소풍하기에도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