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의 전망차

선사시대의 돌촉이

형과니 2023. 5. 17. 00:22

선사시대의 돌촉이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2-03 10:53:47


선사시대의 돌촉이


인조 임금이 부왕의 묘를 이장하려고 미복 차림으로 지관과 함께 계양산에서 명당을 찾고 있을 때였다. 한곳에 이르니 상주와 산역군들이 계곡에 묘를 쓰고 있었다. 측은하게 여겨 은전 몇푼을 주면서 어찌 이런 험한 자리에 묘를 쓰는가고 물었더니, 이곳에 묘를 쓰면 돈이 생기리라는 지관의 말을 따른 것이라고 했다. 임금이 은전을 주었으니 신통력을 믿을 만하다고 여겨 지관을 찾아갔다. 그가 나막신을 깎고 있어 왜 나막신을 깎느냐고 묻자 임금의 나막신을 깎는 중이라고 했다. 깜짝 놀란 인조가 찾아온 연유를 실토하자 북성산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일러준 자리에서는 물이 나오고 다시 지관의 말대로 풍무리쪽 산줄기를 지팡이로 찔러 샘을 솟게 함으로써 광중 물이 빠지게 했다. 한편 김포읍 감정리에도 아홉개의 우물을 더 팠다. 그곳이 구두물 마을이다. 그후 임금이 지관을 찾았으나 노인은 간 곳 없고 나무에 서리만 하얗게 내려 앉아 있어 그곳을 나무서리라고 했다. 오늘날의 계양구 목상동이다.

이것이 김포읍 풍무리에 소재한 장릉의 전설이다. 장릉은 인조의 생부 정원군의 능이며 아들이 임금에 오르면서 추존왕이 되었는데 그가 원종이다. 장릉은 북으로 장릉산을, 서남으로는 계곡을 내려와 원당 벌판을 이룬다. 이곳이 1995년 김포군 검단면의 인천시 편입으로 인천시 관할이 된 원당동이다. 원래 농경지였으나 산업화 물결에 밀려 공장이 들어서고 대단위 축사로 무질서했는데 인천시의 검단지역 신시가지 조성으로 당하동·검단동과 함께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예전의 이곳 출신 출향인들이 찾아온다면 전혀 위치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지난 27일 원당동 근린공원에 선사시대를 테마로 한 검단선사박물관이 개관되었다. 이곳 일대의 도시개발 진행과정에서 발굴한 선사시대 유물과 당시의 생활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해 인천서북지역 선사시대의 유물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박남수 시인은 박물관을 일러 “석기시대의 돌촉 하나가 역사의 하늘을 날아서 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석기가 검단박물관에 날아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