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코박굴 코바위의 전설
부평-코박굴 코바위의 전설
인천의관광/인천의전설
2007-01-23 00:18:29
코박굴 코바위의 전설
지금의 부개동은 옛 지명이 마분리(馬墳里)였다. 아마도 큰 말 무덤이 있어서 그렇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부평동 일대는 대정리(大井里)였는데 그 뜻으로 보면 큰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정리에 코박굴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 뒷산에 마치 사람의 코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대정리 사람 하나가 비에 젖은 멍석을 말리려고 코바위를 덮었는데 그때 마을에 남자들이 죽어 젊은 과부들이 생기고 여자들이 바람이 나는 현상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의 점을 쳐 주는 무당이 말했다.
“코바위는 남자들의 생식기를 뜻하는 것이야. 그런데 그걸 덮으니까 음양의 조화가 어그러져 여자들이 바람이 난 것이야.”
사람들은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꺼림칙하여 멍석 말린 사람에게 얼른 그것을 치우게 했다.
“불행한 일 더 일어나기 전에 어서 그걸 치우게.”
“알았어요. 나는 멋모르고 한 일이지만 정말 그 때문에 일이 생기면 안 되지요.”
멍석 말린 사람은 당장 그것을 걷었다. 그런데 이 미신에 빠진 근거 없는 말은 뜻밖의 사태를 불러왔다. 어느 날 밤중에 누군가가 이엉으로 다시 코바위를 덮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걸 덮었단 말인가.”
대정리 마을 남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얼른 그것을 걷었다. 그런데 사흘 뒤 밤중에 누군가가 또 이엉으로 코바위를 덮은 것이었다. 대정리 마을 남자들은 화가 났다.
“우리 마을에 불행이 덮치기를 바라는 나쁜 놈들이 한 짓이 분명해.”
그들은 밤중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달빛이 희미하게 세상을 비추는데 지게에 이엉을 얹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정리 남자들은 살금살금 그들 뒤를 따라 갔다. 이엉을 지고 온 사람들은 낄낄거리며 자기들끼리 말했다.
“코바위에 이엉을 덮으면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니 우리 마분리 남자들한테는 얼마나 좋은가 말이야. 어서 가서 덮으세. 그리고 이 마을 여자들이 바람나기를 기다리세.”
대정리 사람들은 그들을 덮쳤다.
“이놈들, 우리는 마분리가 이웃이라 친목과 우애를 지켜 왔는데 코바위를 덮다니. 우리 마을 남자들이 죽고 여자들이 과부가 되고 바람나는 게 그렇게 좋단 말이냐!”
“아이쿠, 장난삼아 한 것이외다.”
마분리 사람들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사과했지만 속절없이 대정리 남자들에게 매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사이좋게 살아 온 두 마을 사이에 심각한 분쟁으로 발전했다. 마분리 사람들은 대정리 사람들이 마을을 관통하는 한길을 걸으면 통행세를 내라고 트집을 잡았고, 대정리 사람들은 논의 물꼬를 보면서 물이 마분리로 흘러가지 않게 수로를 막았다.
두 마을 사람들은 장터에 가서도 눈을 흘겼고 연날리기 하는 소년들도 마주치면 서로 붙잡고 싸움을 했다.
“너희 마을은 남의 불행에 좋아서 춤추는 나쁜 마을이야. 네놈들도 속셈이 그럴 거야.”
“물꼬를 막아 버리는 마을은 더 나쁜 마을이야. 네놈들도 그런 욕심쟁이일 거야.”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자 오랜 세월 우정을 지켜온 두 마을의 원로들이 만났다. 자기 마을에서 현명하고 선량하다는 평판을 듣는 노인들이었다.
마분리 노인이 말했다.
“여보게, 우리 마을은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하네.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않은가?”
대정리 노인이 말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한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살아.”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 먼저 사단을 일으킨 마분리 사람들이 음식을 마련해 두 마을이 모두 모이는 잔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아무리 장난이었지만 우리가 잘못했네.”
“아닐세. 그랬다고 심하게 때린 우리가 더 잘못이네. 사실은 근거 없는 미신 이야기였는데 말일세.”
두 마을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서로 권하며 마음을 풀었다. 아이들도 어깨동무를 하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우정을 되찾았다.
그 뒤 두 마을은 어느 곳보다도 더 우애 있게 지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부평 지방이 도시화되면서 그 코바위도 불도저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인천역사문화총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