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연미정
강화도 연미정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9-01-20 00:32:54
역사산책|강화도 연미정
남과 북의 바람이 함께 노닐다
연미정(燕尾亭)은 제비꼬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물의 끝 지점과 바다의 시작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이 정자에서의 달맞이는 강화팔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절경이다. 하지만 연미정의 아름다움 이면에는 쓰라린 역사가 흐르고 있다.
글·유동현 본지 편집장|사진·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연미정은 북한 땅이 마주 바라보이는 강화도 월곶리 끝자락 뾰족 튀어나온 곶(串)의 봉우리에 고풍스럽게 지어진 정자이다. 정자 끝에 서서 DMZ 안에 있는 무인도 유도(留島)를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유도는 한강의 막바지에 있는 섬으로 남과 북의 산하를 씻은 물이 섞이는 곳이다. 정자에 서면 북녘 땅 개풍이 바로 눈앞이다. 소리라도 지르면 송악산에 부딪힌 메아리가 되돌아 올 정도의 거리이다.
옛날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는 이 정자 아래에서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강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썰물 때는 물이 빠져 나가는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물살이 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 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 이름 붙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고종이 강화로 천도한 후 1244년에 시랑(侍郞) 이종주에게 명하여 55명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여름 공부를 시킨 곳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썸머스쿨’을 연 정자로, 경관이 뛰어난 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시원하게 공부했던 곳이다. 그 뒤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연미정은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조선이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으며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통제선 안에 거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정자의 구조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겹처마로 10개의 돌기둥이 떠받히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면적은 약 40㎡이다. 정자 옆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2그루가 정자의 수문장처럼 위엄있게 서 있다.
정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여러 번의 환란 때문에 성치 못한 몸으로 지내오다가 1744년(영조 20)에 유수(留守) 김시혁에 의해 중건되었다. 서남쪽 모서리의 기둥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세 동강 난 것을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 때 붙여 다시 세운 것이다.
가는 길
강화대교 끝 지점에서 우측으로 빠져나와 강화인삼센터 주차장으로 진입한다. 좌회전해서 해안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약 4㎞ 정도 달리면 검문소가 나온다. 연미정을 관람하러 왔다고 얘기하고 신분증을 맡겨두고 월곶돈대로 오르면 그 안에 연미정을 볼 수 있다.
⊙ 연미정 주변에는 ‘포토라인’이 설정돼 있으며, 구역 이외에서의 사진촬영은 금지돼 있다. 관람을 마치고 검문소를 벗어날 때 카메라 검색 절차를 거치는데 이때 군보안에 위반한 사진은 모두 삭제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