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문화재

이윤생강씨정려(李允生.姜氏旌閣)

형과니 2023. 6. 8. 00:39

이윤생강씨정려(李允生.姜氏旌閣)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종 목 시도기념물 제4(남구)

명 칭 이윤생강씨정려(李允生.姜氏旌閣)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1

지 정 일 1990.11.09

소 재 지 인천 남구 용현동 442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부평이씨승지공파종친회

관 리 자 부평이씨승지공파종친회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남구 문화공보실 032-880-4298

일반설명 | 전문설명

 

 

정각이란 충신·효자·열녀 등을 나라에서 표창하여 그들이 사는 고을 입구에 세워 주던 것으로 이 곳은 충신 이윤생(16041637)과 열녀인 그의 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윤생은 인조 14(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의병을 모아 강화도와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며 적의 통로를 차단하였다. 그러나 34살 때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자 그 소식을 들은 부인 강씨도 바다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철종 12(1861)에 이르러 이윤생의 애국심과 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비각이 세웠다.

 

 

이윤생(16041637)은 인천에서 세거(世居)해온 부평이씨 후손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나 충무위 부사과(忠武衛 副司果)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원도(猿島)에 들어가 강화(江華)와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이르는 통로를 차단하고 청병(淸兵)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대군(大軍)이 침입하자 최후까지 분전하였으나 화살이 떨어져 의병 등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전사 소식을 접한 부인 강씨도 바다에 몸을 던져 의절함으로써 철종(哲宗) 12(1861)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