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오래된 떡집 순례
인천의 오래된 떡집 순례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4-03 22:47:38
떡은 덕(德)이요,사랑이라
인천의 오래된 떡집 순례
설이나 명절엔 빠지지 않고 먹었던 떡. 찹살떡, 가래떡, 영양떡, 두텁떡 등 떡의 종류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지금처럼 먹을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떡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제사나 잔치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고, 액막이에도 사용되었으며 경사스러운 날에는 별식으로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옛 속담에 ‘밥위에 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떡은 밥보다 더 맛있는 별미 음식이었다.
글 이용남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70~80년대만 해도 명절즈음의 떡방앗간은 유달리 바빴다. 떡을 만들기 위해 쌀, 콩을 빻으러 오는 아낙네, 들기름, 참기름을 내리러 오는 할머니 등…. 떡방앗간은 항상 문전성시였다. 구도심의 중·동구 일원에만도 예닐곱 군데의 오래된 떡집들이 있었지만 과자와 빵에 밀리고, 구도심 재개발, 쌀·유류 파동, IMF 한파 등을 못이기고 하나 둘 사라지고 말았다.
떡은 덕(德) 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떡을 만드는 일은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일과 같다. 모진 세파를 이기며 전통의 맛을 잇고 있는 오래된 떡집들을 찾아가 본다.
#전동떡집 - 전분 입힌 찹쌀떡의 명맥잇다
동인천역에서 학생교육문화회관 방향으로 걷다 삼치골목에 들어서 10m정도 걷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단층 시멘트건물을 만나게 된다. 전동떡집. 길을 잘 알거나 원래부터 이집에서 떡을 해먹지 않고는 골목의 구석에 자리잡은 이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곳이 60년 가까이 찹쌀떡만을 만들어 온 전통떡집이다.
시어머니에 이어 대를 이어 찹쌀떡을 만들고 있는 며느리 한영화(65) 씨는 시어머니가 워낙 음식솜씨가 좋았고, 어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찹쌀떡 만드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주인장 한영화씨의 손은 찹쌀떡을 찍어내는 기계이자 저울이다. 그녀가 한줌 띄어낸 찹쌀반죽과 팥은 무게와 모양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똑같기 때문이다.
이집 찹쌀떡의 맛은 좋은 재료와 손맛에서 나온다. 국내산 질좋은 찹쌀과 팥을 이용해 찹쌀을 찧고, 팥을 고와 앙금을 만든다. 팥에는 황설탕 외에는 일절 다른 것은 넣지 않고 몇시간 동안 불에서 팥을 고와내고 무명체에 받쳐 고운팥만을 다시 걸러낸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은 좋은 재료와 정성이 빚어낸 결과다.
주인장 한영화 씨는 사람이 먹는 음식에 나쁜 것을 절대 써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지금은 찹쌀떡을 사가는 사람들이 옛날만큼 많지는 않지만 70~80년대만 해도 국회의원 선거때나 명절때면 찹쌀떡을 사방에 퍼다 날랐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고, 찹쌀떡을 사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문이 줄을 잇고 있을 정도로 이집 찹쌀떡 맛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루전에 주문을 받고 다음날 찾아가야 한다. 배달은 하지 않는다. 주인장 한영화 씨는 주문받은 양만 만들어 그날 그날 판매한다.
한영화 씨는 “우리집떡은 깍아주지도, 덤도 없고 배달도 없지만 좋은재료와 정성으로 빚기에 찹쌀떡 맛은 어디에 내놔도 일등”이라고 말한다. 떡은 30개 1만8천5백원, 50개 3만원, 100개 6만원이다. 설날 떡은 설 2주전부터 예약을 받는다. 전화: 772-2553
#창영떡집 - 영양떡, 콩고물 입힌 찹쌀떡이 주 종목
동구 창영동 인천세무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창영떡집. 그럴듯한 간판도 없이 바깥 유리문에 스티커로 창·영·떡·집이라고 붙어있을 뿐. 외관상으로 보면 떡만드는 집이라고는 보이지는 않지만 59년간 떡을 만들어왔다. 주 아이템은 콩고물을 입힌 찹쌀떡과 영양떡이다. 할머니, 아버지에 이어 손자가 전통의 명맥을 잇고 있다.
떡집 운영을 맡고 있는 손자 박원석 씨(36)는 아침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8시나 돼야 하루 일을 마감한다. 이 집 역시 강화교동에서 생산된 쌀과 찹쌀, 국내산 팥으로 떡을 만든다. 좋은재료에 정성까지 더해지니 그 맛은 물으나 마나다.
이 집은 콩고물을 입힌 찹쌀떡과 영양떡이 유명하지만 그 외 다른 이바지떡, 설기떡 등 주문이 들어오면 모든 떡을 방앗간을 갖춘 이곳에서 만들어 납품한다. 떡 모양은 떡 카페나 시중 떡집에서 파는 것처럼 예쁘고 포장이 그럴 듯 하지는 않지만 투박한 우리네 전통의 맛을 살리고 있다.
주로 주문이 많지만 콩고물 입힌 찹살떡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판다. 콩고물 입힌 찹쌀떡은 쫀득쫀득한 맛과 콩고물의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떡집의 일은 고되고 힘들다. 하루17~18시간을 무거운 쌀과 떡을 들고 나르는 노동이 계속된다. 그래서 이곳은 남자 4명이 일한다. 현재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자 박원석씨는 13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다 3년전부터 떡집을 맡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찹쌀떡은 30개 1만3천원, 60개 2만5천원, 90개 3만8천원이다. 10만원 이상 주문해야 배달된다.
문의 : 773-8015
#성광방앗간- 시인이 사랑과 정성으로 빚은 떡
아버지대인 1956년에 떡방앗간을 시작했다는 성광방앗간. 신포시장 닭강정으로 유명한 원조집이 있는 골목으로 쭉 들어가다 중간의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있는 작은 방앗간이다. 아버지, 형님에 이어 6형제중에 막내이자 떡 만드는 시인으로 유명한 이종복(48) 씨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 집은 주로 시장에서 떡파는 집들의 재료를 대주는 일과 주문받은 떡을 납품하기 때문에 시중의 모든 떡을 다 만든다. 전통방식으로 떡을 만들기에 떡 모양은 요즘 나오는 것처럼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 이웃이 먹는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낌없는 재료, 정성은 듬뿍 들어간 웰빙떡 그 자체다.
주인장 이종복 시인은 떡 중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떡은 가래, 설기, 절편 등 기본적인 떡들이라고 한다. 간이나 양을 조금만 잘못 맞추면 떡이 짜거나 싱거워 맛이 안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옛날 방아를 찧던 크고 거대한 기계들은 없지만 쌀을 불리고, 쌀을 빻아 아직도 직접 손으로 떡을 만들어 낸다.
주인장 이종복 시인은 낮에는 떡을 만들지만 밤에는 시 쓰기, 신문사 칼럼, 원고작성에 몰두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다른 곳에 비해 푸대접받고 부각되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 상해 시작한 일들이 현재 그의 다양한 직함을 만들었다.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개항장역사·문화 연구소 대표, 작가회의 시분과 이사 등. 지역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호재만 안겨주고 있다고 자랑한다.
떡만드는 일을 할수록 파스를 붙이는 면적이 늘어간다는 이종복 시인. 고되고 힘든 노동이 그의 시속에 살아 생생히 움직이고 있다. 문의 : 772-5093
신포시장 찹쌀떡 할머니 권태순씨
신포시장 닭강정 골목 한켠 좌판에서 60년간 대를 이어 찹쌀떡을 팔고 있는 권태순 할머니(76). 아침 3시에 일어나 팥을 삶는 일을 시작해서 아침 8시30분이면 신포시장에 나와 저녁 6시까지 찹쌀떡을 판다.
친정어머니가 36세부터 신포시장에 나와 찹쌀떡을 팔기 시작해 76세에 돌아가셨고, 권 할머니도 50세에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26년째 찹쌀떡을 팔고 있다.
권 할머니는 찹쌀떡을 좌판에서 만들어 판다. 콩고물을 입힌 찹쌀떡이다. 장사는 옛날보다 못하지만 할머니의 손맛을 알아본 사람들이 주로 사간다고 한다. 모양은 화려하지 않지만 맛은 일품인 찹쌀떡이다. 권 할머니는 요즘같이 추운겨울 촛불하나를 밑에 킨 스텐레스 의자를 온돌삼아 추위를 견딘다. 할머니의 찹쌀떡은 몇 개 안남은 할머니의 치아처럼 세월의 흔적이 서려있다. 할머니의 소원은 사람들이 찹쌀떡을 지금보다 더 많이 먹는거다. 할머니의 좌판에 더 많은 손님이 들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