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경쟁 궤도'에서 '공존의 장'으로
배다리, '경쟁 궤도'에서 '공존의 장'으로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12-16 12:04:24
배다리, '경쟁 궤도'에서 '공존의 장'으로
[릴레이 칼럼 ⑧] 장한섬 / 플레이캠퍼스 대표
곡선의 길:속도의 직선
영화 <워낭소리>
대한민국을 넘어 월드스타로 부상하는 가수 비가 출연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피드 레이서>가 개봉하던 해, 이름도 모르는 촌부와 늙은 소가 출연한 대한민국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였다.(반면,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여한 <스피드 레이서>는 흥행에 참패했다)
대한민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흥행작이 나왔다면 더 이상 작품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이 농촌배경의 영화가 농촌경험이 거의 없는 20~30대를 주관객층으로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하나의 트렌드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20~30대가 아버지세대보다 더 치열한 경쟁세계로 내몰려 숨 쉴 공간을 찾고 있을 때, <워낭소리>는 경적소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 소리는 경쟁과 질주의 폭음 대신 동행과 공존의 호흡으로 전달되었다.
배다리=우각로(牛角路)+경인철도
경인철도 최초기공지비(도원역 부근)
19세기 말 경인철도의 개통(開通)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선로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제국의 자본이 조선왕조와 조선의 시장을 흡수하는 빨대로 작용한다. 그러면서 조선의 공간권력이었던 향교와 도호부의 이념과 기능은 역사(驛舍)와 RPM(분당 회전수) 속에서 분쇄된다. 그 관성은 해방 후 경인고속도로에서 경인운하, 그리고 한반도대운하로 이어지며, 제국의 시장에서 성장한 건설자본은 직선의 대한민국을 개통(?)시킬 뻔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대한민국 '토건마피아'의 흥망사를 저술할 때 한국철도 최초기공지가 있는 배다리를 주목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자본과 속도를 위한 직선의 폭주(인천 중·동구 관통산업도로)를 여성·예술·교육이 저지했고,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역사)을 여성·예술·교육이 현재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배다리의 진화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몇 년 후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전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투쟁에서 살림으로, 보존에서 창조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다. 근대 이후 한국 역사, 특히 인천의 역사는 일제 중심부였던 현 인천 중구 위주와 일제의 시각에 의해 써졌다. 그런데 배다리는 태생부터 노동자·여성·이주민에 의해 마을과 학교와 시장이 형성되고, 이들에 의해 마을이야기가 전해졌다.
100년이 넘는 학교, 미군부대 음식쓰레기를 '꿀꿀이죽'으로 먹던 생활의 지혜와 담력, 헌책방으로 인천문화생태계의 허파를 만들었던 문화저력, 예술의 생산이 아닌 예술가 생활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공간정체성, 무엇보다 자본의 산업도로를 막아내고 마을의 생태적 환경을 위한 모색과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함께하는 모습이야말로 도시공동체를 밝혀줄 등대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다리는 향수와 이권 때문이 아니라 자치와 자습의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성의 포용이 우리의 미래를 경쟁과 질주에서 동행과 공존의 장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와 기념비로 될 거라 믿는다. 배다리의 진화는 대한민국의 공진화를 위한 선봉의 장(場)으로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