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과옛적의 인천이야기

나의 첫사랑 記

형과니 2023. 6. 27. 09:32

나의 첫사랑

仁川愛/근대 월미도 이야기

 

2014-04-09 16:15:32

 

나의 첫사랑 (나의 첫사랑 기)

 

 

露領南슈랴女史面影

 

洪陽明

 

첫사랑 이약이를 쓰라는 것이 편집자의 주문이엿스나 이런 달콤한 이약이는 마침 품절이라는 것 보담도 별로 신통한 경험이 업는 나임으로 주문의 代用으로 나는 이곳에 내가 일즉이 존경하든 해외에 잇는 한 여성을 소개하고저 함으로써 文債를 갑흐려 함니다. 또한 이 편이 나흘 듯도 함니다.

 

내가 소개하려는 女士에 대하야는 露西亞 方面에 여행한 일이 잇는 이들은 직접 만히 만나기도 햇슬 터이오 맛나지 못햇드래도 그에 대한 이약이 쭘은 생각되는 지극히 포푸라한 인물임니다. 그러나 朝鮮의 따를 발버 보지 못한 이 朝鮮의 누님의 존재에 대하야는 대부분의 諸君은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임니다.

 

! ! 그의 일홈은 쏘베트露國의 여성 사회에 잇서서는 오늘날 확실히 빗나는 일홈의 하나임니다.

무엇이 그로 하야금 그의 일홈을 빗나게 하얏겟슴니가?

 

女士는 그의 선조가 露國移住民이엿든 관계로 순연히 露西亞에서 나고 露西亞 敎育을 밧고 露西亞 이외의 따를 밥지 못한 朝鮮女性임니다. 그는 쏘베트聯邦 내에 거주하는 뒤떠러진 조선여성의 교화를 위하야 항상 조선인의 입장에서 쏘베트國歌의 일을 하고 잇는 朝鮮의 여성임니다. 그는 一時 일구스크極東의 일군을 단시일에 양성하기 위하야 30설립한 政治學校의 강사로써 우수한 남자 일군들을 가르킨 일도 잇고 치따政府軍事 政治 方面의 책임을 가진 일도 잇고 사회과학에 잇서서도 쟁쟁한 이론의 체계를 가진 여성임니다. 그는 그 후에 極東 方面의 정치기관의 朝鮮女子에 대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일하엿슴니다.

 

그는 지금은 36,7세의 활동력의 왕성한 여자로 그 비범한 조직 능력과 논리 정연한 辯舌露西亞에 잇는 朝鮮人 女性社會에 잇서서 제일인자임에 끄치지 안코 朝鮮에 오드래도 그를 당할 사람이 업슬 것이외다. 그는 XXX의 파도 속에 자라고 또 그 속에서 단련된 X과 가치 구더진 여자임니다. 그는 露西亞 帝政時代의 교육을 바든 후에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저 各地로 유랑한 일도 잇다함니다. 그에게 잇서서는 露西亞말이 本國말이고 朝鮮말이 외국어인 셈이지마는 朝鮮語도 그의 애쓴 것도 잇지마는 종잡을 수 업는 사투리 석긴 기괴한 발음으로 제법 의사는 다 표시함니다. 더욱이 漢文글자도 모르면서 애써 배혼 결과로 잉여가치생산 행정이니 하는 등 어려운 학술상 용어를 제법 예사로 석거서 하는 것은 그 서투른 朝鮮말에 비하야 가관이엿슴니다.

 

내가 처음 그를 맛나기는 발서 9년 전의 차듸 찬 겨울! 북쪽 나라의 엇던 도시에 잇는 側樂部에서 엿슴니다. 俱樂部에서는 이곳에 잇는 조선 청년들이 忘年會에 할 연극을 연습하노라고 모힌 때엿슴니다. 나도 이 그룹의 한 멤버가 되여 道化役者의 꿈을 꾸고 잇섯슴니다. 밧게는 露西亞의 명물인 무서운 눈보라(吹雪)가 왼 세상을 뒤집어 업흘 듯이 호통을 하고잇서 俱樂部안의 베지까의 열기쭘으로는 이 무서운 추위를 조곰도 억제치 못하는 차듸 찬 밤이엿슴니다.

우리들이 서투른 役者의 흉내를 정신업시 내고 잇슬 때에 一組의 남녀가 가만히 드러와 엽헤 안젓슴니다. 얼마 잇다가

구경해도 괜찬슴둥

 

하고 뭇는 여자검은 수피 털외투 속에 적은 몸을 싸고 캄캄하나 예민하게 이지적으로 빗나는 눈 세상의 모든 풍파를 다 격근 듯이 세련된 창백한 얼을 가진가 잇섯슴니다.

괜찬슴니다. 이 추운 밤에 연습하는 구경을 오섯스니 너무나 감사함니다.

하고 나는 의자를 내여 노앗슴니다. 그 여자는 다정다감스런 눈등자를 굴니며 엽헤 가만히 안저 구경하다가 우리가 헤여질 때는 가는 줄도 모르게 그는 나가 바렷섯슴니다. 이 때에 이 여자가 바로 유명한 라고 하는 것을 아럿슴니다. 그 함께 온 남자는 바로 유명한 南滿春으로 그의 오라버니라는 것을 아럿슴니다. 이날 낫에 그들은 X에서 이곳에 도착하야 심심하고 朝鮮靑年들이 모힌 것도 볼 겸 俱樂部에 왓든 것이엿슴니다.

 

그 후에 나는 자조 그를 맛나게 되엿슴니다. 그는 어려운 朝鮮말 갓흔 것을 뭇기도 하고 또는 그를 번역하다가 朝鮮말이 맥히면 나를 차저 오고 햇슴니다. 交際가 깁허 감에 따러 그의 성격은 또렷이 드러낫슴니다. 무슨 이론이 나올 때마다 상대방에 不徹底하든지 틀닌 말이 잇스면 熱火와 가치 공격하엿슴니다. 그 반짝이는 샛캄안한 눈 좀 검은 듯이 창백한 얼골은 육체적인 보담도 지식의 閃光이 주는 형언할 수 업는 매력이 잇섯슴니다. 그가 壇上에 올너설 때 천하는 그의 것이오 수천의 그의 남성적인 강렬한 표정 굿세인 抑揚으로 리즘이칼한 諧調를 일우면서 쇠소리와 가치 맥힘 업시 흘너오는 유창한 그의 露語談說露人들은 뿌라뽀하고 절규하는 것이엿슴니다. 그는 확실히 아지테이테요 강한 여자엿슴니다.

 

그러나 역시 그는 여자엿슴니다. 더욱이 31그의 사생활은 지극히 쓸쓸한 것이엿슴니다. 그는 녯싸에 관습으로 한 남편 사이에 나흔 자식이 잇섯슴니다. 그러나 그는 일을 위하야 남편도 자식도 바리고 일을 따러 으로 西으로 흘너 다니는 것이엿슴니다. 그럼으로 그의 생활에는 정착이 업섯슴니다. 지극히 강한 일면에 여자다운 오히려 보통 여자보담 일층 더 多情多恨한 일면을 가진 그는 때를 따러 곳을 따러 또한 만흔 사랑의 씨를 만흔 이성의 가슴에 뿌리는 것이엿슴니다.

한 남성의 충실한 성적 노예가 되는 것 보담 일을 위하는 한 개의 인간이 된 나에게 잇서서 의 해방은 자연한 일이다.이러케 그는 부르짓고 또 실행하엿슴니다.

 

이로 인하야 만흔 비난이 그에게 집중되엿슴니다. ! 朝鮮의 고론 따이?하고 입을 빗죽이는 남녀는 한 둘이 아니엿슴니다. 그러나 그 시비는 나의 할 바 아니나 그가 私事를 용감히 구별하는 것은 感服할 만 하엿슴니다. 그에게는 만흔 트너가 잇는 것은 사실이엿스나 그의 사랑은 그의 사상로써 저울때질하는 사랑이엿슴니다.

 

그는 틈틈이 쎈치멘탈한 노래를 부르기를 조화하얏슴니다. 외국에서 자라 故土를 발부처 보지 못한 그는 틈틈이 나를 향하야

朝鮮! 엇더케 하면 朝鮮에 가볼 수가 잇을가? 朝鮮이 그리워

하고는 어린애와 가치 안타까워하는 것이엿슴니다. 틈틈이 생활의 孤寂을 늣길 때마다 茫茫한 시비리라고 하는 극히 감상적인 노래를 부르고는 울 것과 갓흔 애수의 표정을 하얏슴니다.

나는 역시 여자는 여자의 특성을 벗지 못하는 것을 이 강한 여성 에게서 발견하엿슴니다.

그는 틈틈이 나를 향하야 이럴 때는 고향 생각이 날 테이지하고 어린 동생게에 대함과 갓흔 부드러운 말을 더져주엇슴니다. 그는 밋엄즉한 누님이엿슴니다.

 

春風秋雨는 어느듯 9년이 기나 나는 그 후 東京으로 서울로 上海로 생활을 밧구는 동안에 그에게 만흔 생활의 변화가 잇다는 것을 간혹 듯기도 하엿슴니다. 병나서 南露크리비야에 잇는 療養地에 가 잇단 말도 잇고 혹은 그의 형이 일하고 잇는 外蒙古政府에 가 잇단 말도 잇고 그대로 긔관 일하고 잇단 말도 잇고 그의 소식을 종잡을 길이 업슴이다. 그러나 오즉 바라는 것은 그의 반짝이는 눈, 창백한 얼골에 OO한 긴 시간이 적은 疲勞가 원컨댄 그의 천재적인 섬광과 형언 못할 매력을 빼서가지 말고 건강과 활동이 항상 이 누님의 압헤 잇서 주기를 바랄 뿐이다.

 

純情別離

 

咸大勳

 

첫사랑이라 하면 누구나 순정에 끌어올르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말할 것이외다.투르계넵흐첫사랑이란 작품에 나타난 그 고흔 순정! 고리키의 작품 첫사랑에 낫타난 그 칠줄 몰으는 열정! 32 고리키피마·고르뎨옙흐에 낫타난 나 만흔 남의 안해에 대한 첫사랑의 속삭임!

첫사랑은 그야말로 순정과 열정 그것이외다.

 

그러나 나의 첫사랑은 순정의 속삭임은 되엿슬지언정 그러케 열정에 불타는 사랑은 못되엿다는 것이외다.

내가 그 녀자를 알게 되기는 XX년 십이월 이엿슴니다. 엇떤 장소에서 그 女子와 인사한 것이 기회가 듸여 수일 후 仁川 月尾島 海岸에 간 일이 잇슴니다. 그 때는 1229! 동기휴가가 되여 한가한 때엿슴니다. 그리하여 자조 맛나는 사히가 되엿슴니다.

서로 자조 맛나는 사히에 서로 사랑의 불길이 타올르게 되엿슴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로 別離에 애타는 일이 발생하엿스니 그것은 신학기가 되여 다시 나는 日本으로 가게 되엿다는 것임니다.

우리가 서로 別離한 뒤에는 無形의 정서가 얼킨 사랑의 편지가 오고 갓슴니다.

 

이리하기를 3년 간 계속하엿슴니다. 그러나 서로 學生時代이니 만큼 夏休이나 한번만나게 되엿슬 뿐! 견우와 직녀가 7711차 은하수 강가서 맛나듯이 우리는 11차 도라오는 夏休에 잠간식 맛나든 것이되다. 11차 맛나는 두 사람 사이엿마는 하로나마 연정을 속삭일 기회를 갓지 못하엿슴니다. 그것은 나는 專門에 다니고 그 女子女學校이든만큼 나의 방학은 일으고 그의 방학기일은 느진 때문으로 내가 서울에 나왓슬 때는 아즉도 그 女子1학기 시험때 엿슴이외다... 그리하여 겨우 얼골만 대하고는 서로 헤여저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한녀름을 사랑의 편지만이 오고 갓슬 뿐! 夏休 때에 피서도 못갓슴니다... 그 때는 그 女子도 그로코 나도 또한 그러커니와 피서가는 것이란 뿌르조아들의 亨樂이라는 것 밧게 생각키우지 안헛섯슴니다. 그러하야 우리는 한녀름을 두고 사랑의 편지만 오고가다가 다시 신학기가 되엿슬 때는 서울서 잠간 맛나곤 하엿슴니다.

 

그리는 것이 3년이란 세월이 흘럿슴니다! 그도 졸업기를 압두고 나도 졸업기를 압두고 그해 가을에 우리는 漢江畔에서 별 반짝이는 하늘 아래 서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맛나게 되엿슴니다.

漢江의 푸른 물은 찰사닥 찰사닥 강 언덕에 부듸치고 먼 하늘에는 별 그림자의 깜박이는 냥이 마치 우리의 사랑을 축하하는 것 갓기도 하엿슴니다.

 

그러나 그것이 別離의 시간이 될 줄을 누가 뜻하엿스릿가?... .

그 여자와 나는 그날 밤에 헤여진 뒤 서로 소식도 끈어지엇슴니다. 그런 뒤는 오래ㅅ동안 그 여자를 나는 잇지못햇슴니다.

지금은 그 女子面影조차 내 기억에서 살어젓거니와 그는 퍽도 미모의 여성이엿고 또한 정열의 순결한 처녀엿슴니다. 露西亞 農村 白樺 숩 속에서 자라난 듯한 그러한 여성이엿슴니다.

 

그 정열적이고 미모이든 그 처녀! 그 처녀는 지금은 엇던 남자의 안해가 되엿다는 소리를 들엇슴니다... .

! 지나간 날의 애틋한 추억의 한 토막이여... 움돗는 이봄에... ... 편집자의 이 初戀 맨쓰를 쓰라는 부탁을 밧고서 녯날의 그 처녀를 한번 생각해 보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엿슴니다.

...()... 33

 

사랑·사랑·사랑

 

李鍾鳴

 

아직도 코밋헤는 누런 쌍집팽이를 버틴 普通學校 學生 주제에 아침저녁으로 통학하는 역로에서 누이벌이나 되는 여학생을 맛나면 공연히 가삼이 두근거리고 얼골이 홧홧해지며 붓그러웁다가도 또 멧칠 동안 서로 길이 어긋나서 맛나지 못하게 되면 고만 슬그머니 이저버리고 마는 것과 갓흔 그것도 일종 사랑이라고 볼수 잇슬가?.

 

또 활동사진과 하모니까풋뽈을 조와하며 校帽를 일부러 찌저서 쓰고 다닐 줄 알고 唱歌時間을 제일 중요한 과정으로 아는 불량 중학생이 멧벌 되는 누이집에를 저녁마다 차저가서 그곳에 놀너오는 엇떤 여학생에게 서투른 편지질을 하다가 누이에게 톡톡히 꾸지람을 모시고 결국 禁足까지 당한 그것도 일종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 잇슬가?.

 

허나 이런 것을 죄다 사랑이라고 본다면 사람은 누구든지 한평생 동안 적어도 천 번 이상의 사랑을 한다고 볼 수 잇겟다.

하지만 또한 머리를 길게 기르고 角帽 專門學校學生하이네빠이론를 번역하야 읽혀준 것이 인연으로 그 녀자와 친밀해저서 서로 몸까지 허락하고 부모들 몰내 솟곱질 갓흔 살림을 하다가 결국은 발각이 되야 강제로 헤여진 뒤 그 녀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엿다고 칼모찐을 들고 다니든 그런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잇슬가.

 

또 그럿치 안흐면 어느 매춘부와 사히가 대단히 뜨거워서 집안 어른들에게서 외출금지명령을 당하자 그 녀자는 斷指를 하야 반성과 시위를 하얏스나 결국 희지부지 헤여지고 말게 된 그런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잇슬가?

 

백보 오십보다. 길가에서 우연히 본 아지 못 할 그 녀자의 그 모습이 하로밤 동안 나의 머리 속에 방불한 그것이나 멧 달 멧 해 동안 동거하다가 울고 짜고 헤여지는 것이나 그것이나 헤여저 바렷다는 점에 잇서서는 일반이다. 이러케 보아 나려오니 나는 엇쩐지 아직도 수물 다섯에 다귀를 달은 젊은 몸이언만 무척 사랑도 만히 해보고 녀자에게는 산전수전 다한 것 갓기도 하고 또 엇떠케 보면 아직 사랑다운 사랑을 경험하야보지 못한 것 갓기도 하다.

 

그때 사랑을 아럿드면

徐光霽

 

내 나희 열여덜살 때 상업학교 4학년에 단일 때이다. 34학교 공부는 잘하지 안코 뭐니스하기에 하학만 하면 운동장에서 해 저무는 줄 몰낫슬 때이다.

나보담 두 반 아래인 갓흔 정구선수의 소개로 그의 사촌누의동생을 알게 되엿다.

처음에 그 녀자를 맛나 인사를 할 때에 나는 고개를 들지를 못하엿다. 얼골은 붓그러워서 연지빗 갓치 빨개젓섯다.

연애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질 못하엿고 또한 생전에 처음으로 어엽뿐 녀학생과 한자리에 안게 되자 나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엿스며 머리 우에는 절구를 뒤집어 씨어 노은 것과 갓치 무거웟섯다.

그 녀자와 인사한 지 이삼일 후에 그 녀자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바덧다. 무어라고 씨여 잇섯든지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안는다.

 

그는 그때에는 리화학교에서 모던껄이라는 말을 듯는 녀자이엿다.

그러한 러브렛터를 밧고서도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여서 보냇스면 조흘는지 몰낫다.

그리자 그 녀자에게서 또 편지가 왓다.

나도 용기를 내여서 공책장(편지지도 업섯다)을 뜨더서 봉투도 업시 그냥 접어 떨니는 손으로 그 녀자에게 주엇다.

그런 뒤 아츰 학교에 갈 적이나 또는 학교에서 파한 후 일지라도 그 녀자를 맛나보지 안코는 못견딀 지경에 이르렷다.

밥 먹을 때에도 가삼이 울넝거리여 잘 먹지 못하엿스며 공부시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녀자의 얼골이 낫하나고 하엿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인지도 몰낫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녀자의 손 한번 올케 쥐어보지도 못하고 키쓰 한번 하여보지도 못하엿다.

 

그 녀자는 그때 나보다 성에 눈이 훨신 먼저 띄엿섯다. 나희는 오히려 한 살 아래이엿지만 내가 하로는 중학생의 몸으로 연애를 한다는 것은 넘어 어리지 안흘가요.하닛가.

그 녀자의 말이 지금부터 연애를 하여야 함니다.하는 무자기한 말에 나는 얼골이 더욱 불거젓섯다.

내가 그 녀자의 집에 차저갓슨 때 그의 사촌업바는 일부러 방을 피하여 주나 나는 그것을 리용할 줄을 몰낫다.

그리자 그 녀자에게 사랑의 적이 생길 때 처음으로 사랑의 쓴맛을 아럿다.

그 녀자는 매일과 갓치 날더러 부친에게서 결혼 승락을 맛흐라고 하엿다.

 

그러나 집에 드러가면 어린 아해로 취급을 당하는 내가 장가를 가겟다고 말을 낼 수는 업섯다.

그럿케 우물 주물하는 동안에 그 녀자와 나는 사희가 머러젓다.

나는 지금 생각하여도 그때 확실히 사랑이라는 것을 몰낫섯다. 그 녀자가 나를 바보로 아럿슬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 녀자를 길에서 가ㅅ금 맛날 때마다 나는 그때에 성의 깨다름이 느젓든 것을 늣기고 안타가운 사랑을 바보인 나에게 보내보려는 그 녀자가 퍽 가엽게 보엿다.

 

하엿튼 그 녀자의 덕으로 트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을 동기를 느겻스며 또한 그해 겨을 2학기 시험에 그 녀자의 덕으로 락제도 하여보앗다.

사랑의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 녀자의 얼골만 보고십허하든 나의 순진하고도 고왓든 그 마음 어느 때에나 또다시 차저볼 수 잇슬가? ...()... 35

 

校友會誌令蘭

安德根

 

異鄕에서 쓸쓸히 지내는 현재의 나로서 지내간 날의 달콤한 첫사랑이나 추억해본들 무엇이 시원하겟소?

그래 貴社에서 그 시절로 다시 돌여보내 주시겟소? 지구가 逆轉되지 안는 에 잇서서 그러하시지도 못하실 터인데-

그러나 분부라면 말슴드리지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즉 제가 22살 듸든 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을 체험할 챤쓰를 어더섯슴니다.

당시 나에게는 둘도 업는 친밀한 동무이요 오직 하나인 선배라는 니가 잇섯슴니다. 그때 한게는 XX라는 당시 高女4에 재학 중인 누이동생이 잇섯는 바 는 몹시도 그 동생을 사랑하엿스며 무의식적으로 때때로 자기 누이동생의 칭찬을 하얏슴니다.

 

나는 이 를 뵈인 적이 업섯스나 를 통해서 그의 성격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 윤곽이나마 상상할 수 잇섯스며 그가 엇더한 사람인지 소위 實物이 보고 십헛슴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아마 戀心發露이엇든가 보아요.

 

그리자 그해 가을 高女그라운드에서 小學템과의 庭球試合戰에 출전한 XX를 처음 뵈엿담니다.

수접어하는 태도 그것은 純眞을 표명하는 것 갓고 단정히 입은 그 몸매는 교양에서 오는 에를 님업섯슴니다. 그러나 나는 아모 야심도 가지지 안엇섯슴니다. 그저 괜찬쿤!하는 늣김을 가젓슬 따름이엇서요.

 

얼마잇다 나는 XX가 단이는 高女校友會에서 발행하는 校友會誌令蘭을 참고할 것이 잇서서 XX에게 생전 처음으로 첫인사와 아울너 令蘭을 빌여달나고 첫 편지를 보내엿슴니다.

令蘭은 물론 아모 회답도 일주일이 지나도 업섯슴니다. 용건을 明證햇슬 따름으로서 불온(求愛)한 말은 全然히 업섯는데 아모**이 업슴으로 나는 案外의 사실에 놀낫섯니다.

 

그러하엿든바 어느 일요일 아츰에 보기에도 얌전한 조고마한 封書와 한 권의 책이 배달되엿스니 그것이 문제의 令蘭느저서 미안하다는 뜻과 볼것이 업서서 부끄럽다는 의미의 XX의 은혜로운 편지이엇슴니다.

친척관계가 아닌 이성으로부터의 레-타를 밧기는 이것이 처음이엇스니 그때의 나의 喜悅로 컷슴니다. 어린애 모양으로 막 뛰고 십헛스니까요.

 

기왕 빌여줄 바에는 곳 빌닐 것이지 10여 일이나 지체햇슬가 하는 의문을 독자는 가질는지 모르겟슴니다만 거기에는 那終XX께서 드르니 이러한 근거가 잇섯다 함니다.

 

所請을 드러야 올을는지 쁘이곳트를 해야 36올을는지 첫 번 당하는 일이라 자기 스사로는 해결을 지랴다 못해 自己 옵바 C에게 顚末을 보고하고 엇지해야 조컷는냐고 문의를 하엿든바 C는 아레와 가티 대답하엿다 함니다.

A은 후마지데한 世俗靑年은 안이다. 그럼으로써 너를 戱弄하야는 전제수단으로서 令蘭을 빌니라는 것은 안이라고 밋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빌여주어라 마라라 할 권리는 업스니 네 자유의사대로 하고십흔대로 해라!

 

이상의 경로는 10여 일을 지체케 하엿든 것임니다. 나는 빌여온 令蘭을 다 읽고 나서는 감사하다는 말과 독후감을 써서 令蘭과 아울너 彼女에게 보내엿슴니다.

 

이것이 첫출발의 동기가 되여서 편지는 사흘(3)이 멀가라하고 오고가고 봄직한 나의 문학서적 역시 그러하엿슴니다.

이렁하는 새이에 우리 둘의 사랑은 제2기에 드러가게 되엿스며 제2기를 지나 제3기로 드러가랴할 때에는 달 밝은 밤에 南山을 고요히 거르며 압흐로 취할 푸랜을 세웟다 다시 곤첫다하며 씩씩한 결심을 거듭하엿슴니다.

그랫스나 엇지 뜻해스리요? 4년이 지난 지금도 공개하지 못할 딱한 사정에 의하야 彼女와 나와는 눈물을 먹음고 애닮은 決裂을 짓치 안을 수 업섯서요.

 

그는 영영 내압흘 떠나버리고 마럿슴니다. 얼마 전에 風便에 드르니 彼女는 해외에서 히도리마에노XXXX로서 과감히 XX닌잇다니 유쾌함니다. 깃부외다.

 

이저지지 안는 姜孃

韓仁澤

 

첫사랑 이야기를 쓰라고 명령하시니 붓을 들기는 들엇슴니다만 딱한 일이올시다. 일즉이 련애를 하여본 일이 업는 저에게 자미잇는 이야기가 잇슬 리치가 잇겟슴니까. 사랑이라고 하면 이성 이성의 정열에 넘어 흐르는 행복 환희 그러치 아니하면 고민과 비애 등을 련상하게 되며 이 모든 것이 그것을 싸고돌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일 것임니다. 더욱이 첫사랑에 잇서서 그러한 중 엇더한 것이던지 한가지는 그들의 깁분 마음을 튼튼히 차지하고 그들의 일생에 잇서서 그것만은 영원히 이저지지 안을 것임니다. 그러하니 련애하여본 일이 업는 저는 이러한 경험이 업스니 첫사랑 이야기를 쓸 자격(?)을 가지지 못하엿슴니다. 서곡은 이만 늘어노코 제가 여기에 쓰려고 하는 것은 내가 어렷슬 때 한 이성을 위하야 홀노 어린 가슴을 애태우며 그를 사모하던 좀더 자서히 말한다면 짝사랑을 하던 이야기를 첫사랑 대신에 말하려고 함니다. 지금도 오히려 그가 이저지지 안코 그리워질 때가 만슴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이니까 사랑이 무언지 철업고 순진한 때의 일이다. 내가 하숙하고 잇던 곳이 동숭동(東崇洞)번지는 오래 전이니까 이젓다. 그때 나보담 1년을 더러저잇는 즉 1학년생 와 한방에 함께 하숙하고 이섯다. 그러고 벽을 사이로 한 아래방에 문제의 주인공 강량(姜孃)과 또 엇던 녀자-그 녀자의 일홈은 지금은 이젓다. (75) 37

 

(75에 속함) 이러케 그를 홀노 마음속으로 련모하고 그리워하기를 그 녀자가 그 하숙을 떠나갈 때까지 게속한 것이 아니라, 그 후 몃해를 두고 그를 련모하엿다.

강이 그 하숙을 떠나 가게될 때 나도 무엇을 일허버린 것 가티 마음속이 텅 비인 것 갓고, 그곳에 잇고 십흔 생각도 업고 하야, 가치잇는 와 함께 다른 하숙으로 올마간 일까지 잇섯다. 그 녀자가 올마간 후에는 한번도 그를 맛나보지 못하엿다. 소식조차 알 바 길이 업섯다.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고 잇다. 다만 강이 고향이 고원(高原)이라는 것만, 그때 우연한 긔희에 알엇슬 뿐이다. 지금도 함경선을 타고 고원역을 지낼 때마다 강이 긔억이 새로워지며 그 때의 일이 머리에 떠돌아서 혼자 우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엇다.

 

엇더턴 오래 전 일이나 긔억에서 좀처럼 싸러지지 아니함으로 첫사랑 이야기를 쓰라고 할 때도 강의 일이 머리에 떠돌아서 우습고 아모것도 아닌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강씨의 일홈만은 지금도 긔억하고 잇스나, 그것은 말하지 안키로 하겟다.둘이 잇섯다. 이러케 한 하숙에 잇스면서도 어리고 순진한 때라, 이성을 보면 부끄러운 생각과 수줌은 마음이 압서서 그들을 바로 치어다보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강이라는 이성을 퍽 사모하엿다. 지금 생각하여보아도 강은 그때 그러케 미인은 아니엿다. 민인이라면 차라리 강과 가치잇는 다른 녀자 편이엿다. 그러나 나도 알지 못하게 미인이 아닌 강이 조케 생각이 되엿던 것이다. 그 둘과 일년이나 그곳에 함께 잇스면서도 또 강을 그러케까지 사모하면서도 서로 인사는 고사하고 말도 하여보지 못하엿다. 그것은 내 마음이 수접은 까닭이다. 그들이 말을 먼저 부치어도 부끄러워서 대답을 겨우하고, 엇쩔줄을 모를 때이엿스니,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일이 우습기도 하고 행복스러워 보이기도 하엿다. 75

34-37, 75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3

발행년월일 19330301

기사제목 나의 첫사랑

필자

기사형태 회고·수기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