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藝-春園硏究 (八)
文藝-春園硏究 (八)
仁川愛/근대 월미도 이야기
2014-04-09 16:18:48
文藝-春園硏究 (八) (문예-춘원연구 (팔))
金東仁
再生 (此項承前)
혼란된 저술
이리하여 사형선고를 바든 뒤의 봉구의 성격은 지리멸렬이엇다. 그는 대체 지사적 비장한 기분으로 사형을 달갑게 바드려 하는지 혹은 죽음에 대하여 극도로 공포를 느끼고 잇는 사람인지 독자는 판단을 나릴 수가 업다.
감옥안에서 尹변호사의 면회를 밧고 도로 감방으로 돌아온 뒤의 數十頁은 독자로서는 도저히 갈피를 차릴 수 업는 혼란된 서술이다. 작자의 붓이 지향업시 난무하는 뿐이지 합리적의 심리진전은 어더 볼 수가 업다.
이러케 난무하던 붓을 작자는 장차 어떠케 매즈려하나.
판결을 바든지 닷새째 되는 날-즉 이날 안으로 공소를 하지 안흐면 일심 판결이 확정되는 날 봉구는 갑작이 生에 대한 집착을 느꼇다. 그러나 작자는 여기서
윤 변호사를 대하야 그러케 큰 소리(공소할 필요가 업다는 말)을 하여노코 또 검사와 판사에게 그러케 큰 소리를 하여 노코 이제 다시 공소를 한다는 것은 넘어도 염치 업는<270> 일 가치 생각되엿다 운운.
이러케 서술하엿다. 「생」에 대한 욕망에도 능히 염치 문제가 끼울 틈사리가 잇슬까.
「공소를 하자.」
이러케 봉구는 중얼거렷다. 그러나 참아 전옥에게 애걸할 생각은 나지 안헛다. 그러케 하는 것이 자기를 여지업시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되엿다. 이 때문에 봉구는 더욱 괴로웟다. 그는 주먹으로 벽을 따려보앗다. 발로 방ㅅ바닥을 굴러보앗다. 그러나 튼튼한 벽과 방ㅅ바닥은 다만 텅텅하는 소리를 내일 뿐이엇다.
마츰내 봉구는 정신빠진 사람 모양으로 키보다도 놉픈 창에 부터서 멀건히 밧갓흘 바라보앗다.
이러틋 애타하고 초조해 하는 봉구의 가슴의 한 편에 이 생사 문제보다도 더욱 긴하게 염치 문제가 개재할 여유가 잇슬까. 단지 독자의 마음을 충동키 위하여 주인공의 성격을 무시하고 붓이 외도로 버더 나간 것이다.
白富者의 別莊
이리하여 鳳九의 생사가 어떠케 될지 미지수로 남겨둔채 작자는 슬쩍 딴소리를 끄내엿다. 일즉이 「無情」에 잇서서 영채로 하여금 大洞江에 빠저 죽으려 길을 떠나게 한 뒤에 붓을 딴 길로 옴겨서 독자로 하여금 속을 타게 한 奇謀를 작자는 또 여기서 사용하엿다.
무대는 동대문 박 白富者의 別莊.
순영은 엇떤 날 본 마누라 문병을 갓다가 집으로 돌아오매 남편은 웬 머리 따하느린<271> 여자와 白晝에 同衾을 하는 것이엇다.
거기서는 당연히 부처싸움이 일어난다. 그런 뒤에는 자기 집을 뛰처 나와서, 이전 자기가 재학하던 학교에 피부인을 자저갓다. (여기도 또한 상편에서는 W학교더니 여기서는 Y학교로 되엿다.)
무얼하려 피부인을 차졋는지 알 수 업다. 작자도 설명치 안헛다. 이 때의 순영은 반광란의 인물이라 작자도 광인의 행동에는 설명을 못하엿슬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피부인은 처음에는 순영을 냉담하게 대하다가 마즈막에는 순영을 동정하여 순영을 입마춘다. 그때 순영은-
피부인의 입 마촌 등을 만짐은 순영의 령혼을 뿌리부터 흔들어 노핫다. 그것은 마치 전기와 가치 순영의 령혼을 찌르르하게 흔들어 들추어서 새로운 령혼을 이루는 듯 하엿다. 순영의 눈물 흐르는 눈 압헤는 오랜동안 보지 못하엿던 광명의 세게가 번뜻 보엿다. 아츰 햇빗이 넘치는 새로운 세게에 끗업시 푸른 벌판이 열린 듯 하엿다.
(畧-원문)
순영은 자기가 하랴고 가지고 왓던 말을 다 할 필요가 업슴을 깨달앗다. 오직 한 마듸 할 말이 잇다하면 그것은
「선생님 말슴은 과연 올흐십니다. 저도 오늘부터는 선생님 말슴대로 새 생활을 시작하겟슴니다.
제 맘이 흐리고 어두워서 보지 못하엿던 것을 선생님께서 분명히 보여 주시엇슴니다.」할 것 뿐이다.
운운하여 一見 순영은 진심으로 悔悟를 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잇서서 누차 순영이의 임시적 회오를 보고 희망을 부첫다가 낙망하고 한 독자는 역시 이를 신용치 안흘 것이다. 그러고 과연 신용할 수 업섯다.
春園의 작품에 흔히 나와서 도로혀 장면을 그릇치는 것이 이 극적의 경건한 씨-ㄴ이다. 이런 극적 씨-ㄴ을 만들기 위하여 작자는 작중 인물의 성격으로서의 필연적 발전을 고려치 안코 이런 장면을 끼우기를 질겨한다.
그러는 一방 감옥에 잇는 봉구는 사형의 선고를 바든 몸이라 당연히 죽을 것이지만 하늘이 그의 무죄를 돌보아 주엇던지 우연히 진범인 경훈이가 사상관계 사건으로 잡혀끼 때문에 봉구의 원죄가 들어나서 봉구는 다시 광명한 일월을 보게 되엿다.
悲壯한 장면을 부러 만들기 위하여 봉구의 성격을 무시하고 「묵묵히 사형을 기두르는 봉구」를 만들엇던 작자는 이 소설의 기정 코-쓰(봉구의 무죄출옥)를 밟게 하기 위하여는 좀 어색한 필법을 쓰지 안흘 수가 업섯다. 檢事廷에 경훈과의 對面場이며 봉구의 출옥 장면은 슬슬 넘겨 버려서 실감을 주지를 안하엿다.
봉구와 함께 출옥한 경주(인천 김의관의 작은 딸은 도로 인천으로 나려간다. 그 경수를 정거쟝까지 전송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봉쿠는 돌아오는 길에서 의외에도 순영이를 보앗다.
순영도 비극의 코-쓰를 밟는다.
그는 피부인을 만난 날부터 남편의 집에서 나왓다.
나오기는 나왓다. 그러나 순영과 가튼 성격의 사람으로서는 다시 들어갈 길을 예정하지 안코는 나오지를 안흘 것이다. 법정에서 봉구를 변호하고 돌아와서도 그냥 남편의 품을 그린 이 여자이매<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이 소설에 비극적 결말을 짓기 위해서 순영으로 하여금 감연히 남편의 집에서 뛰여나오게 하엿다. 뿐더러 남편이 그의 아들 (사실은 봉구와 순영의 아들)을 빼아서 갈 때도 순영은 그냥 남편의 집으로 안 갓스며 남편이 누차 사람를 보내서 도로 오라 할 때도 순영은 귀도 안기우리고 남편이 직접와서 달랠 때도 여전히 잡아 떼엇다.
이것은 백씨의 성격으로도 하지 안흘 일이요. 순영이의 성격으로도 못할 노릇이다. 단지 작자의 悲壯癖이 순영을 그런 코-쓰로 인도한 따름이다.
이 순영의 수난적 비극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기 위하여 작자는 더욱 곡필을 하엿스니 즉 인순이가 순영이에게 대한 태도다.
인순이는 아조 온순하고 애정의 權化로서 일쯕이는 순영이가 백의 妾노릇을 할 때도 함께 月尾島까지 가서 벗을 하여주든-순영이에게는 知己之友엇다.
순영이가 남편의 집을 뛰처 나와서 쓸쓸한 생활을 할 동안 순영은 인순이라도 좀 만나보고 시퍼서 인순이에게 편지를 하엿다.
그랫는데 인순이에게서는 회답도 오지안코.
(上畧-원문) 어느 날 저녁 신문에 인순의 사진이 나고 인순은 미국에 류학가는 길로 그날 밤 차로 일본을 향하여 떠난다는 말이낫다. 그 기사를 볼 때에 순영은 실망과 분노와 시기가 한데 석긴 무서운 불쾌감을 깨달앗다.
그 이튼날 저녁 엽서 한 장이 왓다-
「편지는 밧닷스나 길 떠날 준비에 분주하야 가지 못하오며 옛일을 다 회개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려 하신다니 깃겁사오며 아모조록 주의 뜻을 잇지 말고 나아가시기를 바라나이다. 총총 이만.」<274>
이러케 냉정한 편지다.(畧-원문)
작자가 상편에서 보여준 인순의 성격은 결코 不遇에 잇는 친구를 냉대할 사람이 아니다. 단지 작자가 고의로 순영의 환경을 더욱 비참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막을 꾸며 너흔 것이겟스나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고의로 인순을 얄밉게 보는 결과를 짓게 한 것으로서 작중 인물에게 대하여 범한 작자의 죄과라 아니할 수 업다.
米國博士 金氏 登場
이 고적한 순영에게 또 미국박사 김씨가 추근추근 차자단닌다.
함께 미국이고 어듸고 멀리 가자한다. 김박사는 그새 만흔 여자의 웅덩이를 쪼자다니다가 다 실패를 하고 다시 순영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순영의 뱃속에 지금 생장하는 白씨의 씨를 떼어버리자, 그리고 멀리 말성업는 고장으로 가자, 연하여 꾀는 것이엇다.
이 유혹에 솔깃하면서도 주저하고 주저하면서도 거절하는 긔괴한 심리를 탄복할 수 밧게 업다. 아직껏 순영의 성격을 일허버리고 비극적으로만 끄을어가려고 갈팡질팡하던 붓은 여기서 數十頁間을 다시 제 길로 들어서서 음지긴다.
그리고 그동안의 한에 비쏘-트로서 작자는 조선 사회의 일면을 독자의 아페 공개한다. 즉이 불우의 여성을 좀 어떠케 건드려 보량으로 신문기자며 문사라는 일당이 연하여 차자와서 서로
「기미 도오가? 얍바리 와가, 슝에이상와 비진다로?」
「오이꼬라. 와가 슝에이또와 게시카란조」
등등 야로를 하다가 순영에게 욕을 어더먹은 뒤에는 그 분푸리로 순영의 사건을 아조 고약하게 신문에 내인다.<275>
이런 등등 아조, 수난의 생활을 하던 순영은 어떤 날 결심을 하고 봉구를 차자보기로 하엿다. 출옥한 뒤에도 봉구는 순영을 잇지못하여 앙앙불락하고 잇다. 이 꽁한 샌님은 순영을 뮈워하고 시프나 뮈워하지도 못하고 가슴만 태우며 잇다. 그런데 인천 김경주에게서 지금 급한 일이 잇스니 나려와 달라는 통지를 밧고 바야흐로 길을 나서려 할 때 순영이 봉구의 집을 차저온 것이다.
뮈워하려하나 뮈워할 수도 업든 선영의 방문을 바든 봉구는 필시 마음은 환희로 떨엇슬 것이다. 그러나 표면 냉연히 마잣다. 순영은 봉구에게 울면서 용서를 구하엿다. 그러나 봉구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하다.
이 냉담(표면상의)은 어떤 정도까지는 수긍할 수 잇다. 그러나 후일 경주의 그러틋 끌는 애모를 차버리고 일생을 자폭적 독신생활을 하니만치 순영을 연연불망하는 봉구로서 끗까지 이러틋 냉담한 표면을 가식할 수가 잇섯슬까.
이것은 단지 작자가 이 作의 기정결말으로 봉구를 끄을어 가기 위하여 봉구의 행동을 강제하엿다 볼 수밧게 업다.
장면은 一轉하면서 인천
경주의 어머니의 임종이라. 경주의 아버지는 비명횡사를 하고 그의 장자인 동시에 상속인인 경훈이는 尊親族故殺犯으로 옥중에 잇는지라, 그의 유산에는 문제가 만하지게 되엿다. 제각기 먹어보겟다고 달려든다. 더구나 경주의 어머니조차 다시 일어나지 못할 중태라 가정 소란이 대단하엿다.
여기서 경주의 어머니는 첫재로는 딸 경주의 장내를 부탁하고저 둘재로는 재산 정리를 부탁하고저 고인쩍부터 신임해오던 봉구를 부른 것이다. 경주모의 臨終席에서 넘어가는<276> 마즈막 목숨을 억지로 멈주고 자기 딸과 봉구의 손을 조잡혀 노코 「내 딸을 거두어주게.」 하는 부탁을 나리고 드듸어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정성에도 감동치 못하는 봉구. 봉구는 그래도 경주를 안내로 마즐 생각이 업섯다. 단지 그의 생각하는 것은 순영뿐이다. 순영 이외의 여인은 여인으로 볼 줄 모르는 봉구이다.
이리하여 이 소설은 여기서 일단락을 맷고 그러고는 껑충 뛰여서 3년이라 하는 세월이 흘러간 뒤의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러고 거기서 이 소설의 전체를 망처버린 모순된 비극을 향하여 급템포로 나려간다.
3년 뒤.
순영은 泳登浦 紡績工場의 여공으로 그새 모진 목숨을 부지하여 왓다. 그때는 이전 백씨와 헤질 때에 그의 배에 들엇던 백씨의 씨가(게집애다) 생겻다.
白氏에게서 전염된 성병 때문에 게집애는 소경이 되엿다.
이 순영이는 지금 그의 생애의 청산을 하려는 길에 마즈막으로 봉구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시퍼서 봉구를 차자간다.
그 때는 봉구는 비통한 가슴을 부등켜안고 金谷서 농사를 짓고 야학선생 노릇을 하며 뜻업는 여생을 보내는 것이엇다.
이 때의 봉구의 심경을 작자는 이러케 설명하엿다.
야학을 가르키고 눈 우에 비초인 달을 밟으면서 늣게야 집으로 돌아올 때에 그는 눈 우에 끌려오는 혹은 압서가는 자기의 외로운 그림자를 보고 울지 아니하엿든가. -울때마다 그의 눈물 속에는 순영을 생각하는 깁흔 슬픔이 녹아들지 안햇던가. 경주가 인천에 잇는 자기 집도 버리고 봉구를 따라와 진일 구즌 일을 다하여 가며 오직 봉구의 겻헤만 잇기를 원할 때에 봉구는 경주의 그 참되고도 측은한 사랑을 바다들이지 못하는 것도<277> 가슴에 기피 백인 순영의 생각을 떼여 버릴 수가 업기 때문이 아니엇든가?
(中略-원문)
순영은 봉구에게 안온다는 조건
「나는 이로부터 혼자다. 하늘 아래 땅 우에 나는 혼자다. 영원히 혼자다.」
「인제부터 조선의 강산이 내 사랑이다. 내 임이다. 조선의 불상한 백성이 내 사랑이다. 내 임이다. 죽고 남은 이 목숨을 나는 그들에게 바치랸다. 그들과 가치 울고 가치 웃고 그들과 갓치 고생하고 가치 굶고 가치 헐벗자. 그들의 동무가 되고 심부름ㅅ군이 되자 종이 되자.
「모든 빗나는 것이어. 모든 호화로운 것이어. 모든 아름다운 것이어. 다 가라. 조선의 모든 백성이 다 안낙을 누릴 때까지 내 몸에 안낙이 업스리라. 다 한가히 놀 수 잇슬 때까지 내게 한가함이 업스리라.
「만일 순영과 가치 한다면?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꿈일너라. 다시 오지 못할 꿈일러라.
「가자! 우리 임에게로 가자! 불상한 조선 백성에게로 가자! 농부에게로 가자! 거기서 그들과 가치 땀을 흘리고 그들과 가치 죽어 그들과 가튼 공동묘지에 무치자.」
이 센틔멘탈한 문장으로 역거내린 봉구의 비장한 결심은 어떤 전제가 잇기 전에는 존재치 못할 것이다. 봉구의 성격으로는 이만한 자기 虐待癖은 가젓슬 사람이지만 이런 결심을 나리기에는 반듯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즉 순영이 영구히 봉구에게 올 가망이 전무하다 하는 조건이다.
이 땅에 바치자 한 봉구의 결심은 작자도 말한 바와 가치 「선영 이미 업스니 이 땅에나 바치자.」는 자폭적 心境에서 나온 者이다. 이러한 심경으로서 자기 학대를 하는 사람에게 순영이 다시 차자온다 하면 그 결과가 어떠할까.
그는 몃 번 더 냉담을 가식할넌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자의 눈물을 보면 그는 이 압페 감읍하지<278> 안으면 안될 것이다
경주도 봉구의 집에 와서 산다, 그러타고 夫妻가 된 바가 아니다. 경주는 봉구가 너머도 그리워서 「그저 겟헤만 두어 주시요.」하고 와서 함께 한 집에 사는 다름이다.
이리하여 이 金谷農村에는 순정적 자기 희생자 한 사람과 자폭적 자기 희생자 한 사람이 세상에 긔묘한 생활을 하고 잇다.
여기 순영이 차자 온 것이다. 그러고 사흘ㅅ동안을 無爲히 잇다가 元山으로 가노라는 한 마듸를 남겨노코 순영은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고 순영이 다녀간지 엿샛만에 금강산 온정리에서 부친 순영의 편지는 왓다. 그 편지에는 자기는 자살하려 이 곳에 왓스며 이 편지가 「사랑하는 봉구씨」에게 이른때 쯤은 자기는 벌서 죽엇스리라는 말이 적히어 잇다.
봉구는 곳 행장을 수습하고 금강산을 향하여 떠낫다.
外金剛 九龍淵의 씨인
外金剛
九龍淵 가는 길.
소경 딸을 이끌은 초라한 여인이 단풍의 금강산을 九龍淵을 향하여 길을 더듬고 잇다. 비극적 奇遇가 생긴다. 즉 순영의 모교 생도들이 수학여행을 온 것이다. 이리하여 相距萬里나 되는 兩者의 대조가 독자의 눈 압페 展列된다.
그 뒤에는 이 모녀는 폭포 속으로 잠겨 버린다. 봉구가 허덕 허덕 달려왓다.
시체를 어든 봉구.
「아아 순영이! 안죽으도 조흘 것을」 자기 학대벽을 다분히 가진 이 기청년은 일이 저즐러진 뒤에 후회를 한다.<279>
얼마나 사랑하던 사람인고 엇덧케나 사랑하던 사람인고- 그런데 그 사람은 소리업는 시체가 되여 버리고 말앗고나! 한 마듸만 말을 하엿스면 한이 업겟다. 봉구 자기가 지금까지 변함업시 순영을 사랑하여 왓다는 것과 순영의 지나간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겟다는 말만 들려준 뒤에 순영이가 죽엇더라도 한이 업슬 것 갓탓다.
금곡 왓슬 때에 봉구가 한 마듸만 부두러운 말을 하여 주엇더라도 순영이가 죽지는 아니하엿슬 것을-순영을 사랑하노라고 한 마듸만 하여 주엇던들 순영은 자기의 품ㅅ속에서 남은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잇섯슬 걸- 세상에서 다시 지접할 곳이 업서 자기를 차자온 순영을 자기마자 냉대하야 죽음의 나라로 보낸 것을 생각할 때에 봉구의 가슴은 칼로 에우는 듯이 아팟다.
그러나 봉구와 가치 자기 학대벽이 강한 인물에게는 순영의 주검 아페서 자기의 지난 실수를 스스로 책하는 편이 통쾌하지 안흘까. 순영과 일생을 가치하여 調信之夢의 歎을 하느니 보다는 이 편이 행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아레서 희극 한 개가 더 연출되고 이 상하편의 재생은 막을 다친다.
순영의 오빠 순홍이 갑자기 뛰처 나온다. 수년 전에 어듸다가 폭발탄을 던지고 잠적하엿던 순홍이가, 봉구가 홀로 밤에 순홍의 시체 아페 밤경을 할 때에 그의 아페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고는 누이의 시체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표연히 어두움ㅅ 가운데로 사라지는 것이엇다.
이리하여 이튼날 神溪寺 洞口박게 새 무덤이 생기고.
「나의 사랑하는 안해 순영의 무덤. 무정한 봉구는 울고 세우노라.」
하는 비석이 섯다는 것으로 「再生」은 아모「재생도 업시 終幕을 고한다.」
우에도 말하엿거니와 이 결말은 작자의 본시의 企圖는 아니리라.<280>
「순영을 밉게 보기 때문에 봉구는 세상을 버리고 농촌에 숨엇다.
그 때에 세상 살이에 시달리고 시달린 순영이(어떤 곡절로던) 봉구를 차자온다. 봉구는 아직껏 그러케 밉게 보던 순영을 만낫다. 순영의 눈물을 보앗다. 봉구가 진심으로 순영을 미워하던 것이 아니엇다. 순영의 눈물을 볼 때에 봉구의 마음은 다 녹아 버렷다.
「그러고 悔改한 여인과 용서한 남자의 두 사람들은 새로운 활기로서 그들의 再生의 길에 나선다.」
이런 企圖가 아니엇슬까. 그러치 안타하면 「再生」이라는 제목은 무의미하다.
이 作의 死因
요컨대 「再生」은 그 團圓에 잇서서 이것을 비극적 비장미를 내게하기 위하여 작중 인물들을 억지로 딴 길로 끌어 들인데 이 作의 死因이 잇다.
이 再生 전체를 읽은 뒤에 독자의 머리에 그냥 남는 것은 아모 것도 업다. 비극이엇다 하는 개념 이외에는 남는 者가 업다
무엇이 이런 비극을 지엇느냐?
작자도 대답 못할 것이고 독자도 대답 못할 것이다. 여기 대답하려면 「再生」의 내용을 전부 다시 되푸리 하여야 하지. 합리적 원인을 들 수가 업다.
웨?
이 소설 자체가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엿스니까.
소설의 내용이 흥미 일방인지라, 독자는 그 압력에 끌리워서 단숨에 말미까지는 읽을 것이다.
그러나 독파한 뒤에 심사할 근터리를 주지 못한 이 소설은 따라서 읽기를 강제하고 생각키를 금한 작품」으로 볼 수 박게 업다.
흥미에 끌리워서 一氣讀破한 뒤에 맹낭한 느낌을 밧는 연유가 여기 잇다. 이 소설은 소설 속의 몃 개의 인물의 행장기지. 그것이 합처서 한 개 인생을 보여주지 못하엿다. (此項完)<281>
<269-281>
잡지명 삼천리 제7권 제7호
발행년월일 1935년 08월 01일
기사제목 文藝-春園硏究 (八)
필자 金東仁 김동인
기사형태 문예평론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