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공단/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주안공단/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8 19:20:23
산업화 요충지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도시유목Ⅱ - ⑦ 주안공단
탐사대가 머문 경동산업 건물. 경동산업은 89년 노동자 2명이 분신자살을 한 곳이다.
인천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도시유목2'를 떠난 인천도시문화탐사대(탐사대장민운기)는 지난달 24∼25일 인천 산업화의 상징인 주안공단을 탐사했다.
살아있는 역사공간
인천은 분명 생산의 도시이다. 차를 타고 산업단지를 한바퀴 돌아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들을 만날 수 있다.
논에서 땀을 흘려 본 사람이 쌀밥 귀한 줄 안다는데, 오늘날 도시인들에게 생산 공장은 그저 피하고 싶은 장소일 뿐이다. 주안국가산업단지는 한국 수출산업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196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주안의 수출공단은, 서울 구로동의 제3공단, 인천 부평의 '제4공단'에 이어서 '제5공단'와 '제6공단'으로 명명되었다. 지금 구로동이나 부평에서는 옛 공단의 모습을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주안공단은 한국 수출산업의 역사를 증언하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남게 된 것이다. 탐사대는 옛 인천교 너머, 노동운동으로 유명했던 구 경동산업 뒤쪽의 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20년 정도 자리를 지켜온 듯 보이는 구식 공장들이 웅- 웅- 기계소리를 내며 탐사대를 맞아 주었다.
공장의 안과 밖
허름한 공장의 정문 앞에는 크고 작은 장치들이 로봇처럼 서 있었다. 그것은 공장내부에서 발생하는 분진을 흡입하여 처리하는 '집진기'였다. 탐사대원들은 낡은 집진기와 색 바랜 슬레이트 벽체가 인상적인 오래된 공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장 안에는 크고 작은 기계들과 작업도구들이 열을 지어 놓여 있었고, 그 속에서 몇 명의 노동자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탐사대에게 촬영을 허락한 노동자들은 마치 그들과 우리가 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일을 하고 있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박자를 맞춰 들려왔다. "척, 척, 척, 쿵-" 그리고 묵직하게 하늘을 누르는 듯 공간을 채우는 집진기의 모터 소리와 진동이 공장 안에서 정신없이 요동치며 난해한 현대음악의 절정부가 연주되는 듯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인근 공장들의 경비 업무를 맡고 계신다는 노동자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1980년대 이곳에는 식기를 만드는 유명한 경동산업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약 2천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고, 주변에 다른 큰 공장들도 많아서, 큰길 앞 인천교 건너편에는 식당과 술집들도 즐비했다. 월급날이면 외상값을 받으려는 밥집, 술집 주인들이 공장 정문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곤 했다. 사람 사는 맛이 물씬 묻어나는 공단 풍경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자신도 경동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는데, 작업 도중 발생한 산업재해로 왼쪽 손가락을 모두 잃고, 지금까지 경비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들 공장들이 곧 사라지게 될 예정이다. 아마도 공단 측에서는 오래된 공장들을 모두 헐고 새로 공장을 짓는 듯 했다.
이미 주안공단 대부분은 새 공장들로 바뀐 지 오래다. 새 공장들은 최신 설비와 말끔한 외관으로 단장되어 있지만, 왠지 점점 더 삭막한 공간이 되어가는 듯 보인다.
공단을 지키는 '태권V'
탐사대는 공단에서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회색이나 파란색 등으로 단순하게 통일되어 있는 공장들. 노동자들의 낙서 하나 찾을 수 없고, 그 요란한 경제성장 '기적'을 기념하는 어떤 자취도 찾을 수 없는 기억 상실의 공간. 여기서는 도무지 창의적인 생산의 에너지와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탐사대는 단조로운 공단에 '색깔'을 입혀보고 또한 공단의 역사적 기억을 잠시 떠올려보기로 했다. 우선 공터 옆에 세워 둔 집진기를 공단을 지키는 '로보트 태권V'로 만들었다. 그리고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공장 주변에 버려져 있던 목장갑들을 모아서 작은 기념물을 만들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공장'과 '문화'라는 두 단어는 쉽게 하나가 되었다. 공단 안에서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 쉴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이 증명되는 듯 했다. 역사성이 큰 옛 공장은 산업노동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고, 공단의 역사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든다면 어떨까? 공단 내 공장 외벽 등을 예술 활동가들에게 개방하여 멋진 공단 벽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미 산업구조조정을 거친 선진국은 기존 공장 부지를 헐어버리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승화시켜 재활용해 왔다. 주안공단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창조적 생산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인천도시문화탐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