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인천의 역사전-인천 축항(築港)의 역사

형과니 2023. 3. 28. 12:04

인천의 역사전-인천 축항(築港)의 역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1 09:22:16

 

인천의 역사전-인천 축항(築港)의 역사

인천항 축항모습 `생생'

인천시 역사자료관 21일부터 사진전

 

인천항 축항 과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가 열린다.

 

 그동안 공개됐던 인천항 축항 관련 사진은 일제시대 발행된 엽서나 단편적이었으나,

그 전체 과정을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은 21일부터 27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전시실에서

사진으로 보는 인천의 역사전-인천 축항(築港)의 역사, 19061918사진전을 개최한다.

 

 전시되는 사진 자료는 19183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자료들로,

일제가 19061918년 진행한 인천항 축항의 전 과정을 밝힌 사진 150여점이다. 또 이에 대한 해설도 함께 달았다.

 

 인천축항의 전개과정은 총 10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담은

총설과 제1편 축항 계획(築港計劃),

2편 인천항안 변천(港岸變遷),

3편 기공(起工),

4편 안벽공사(岸壁工事),

5편 갑문(閘門),

6편 갑문(閘門)의 문()과 제수문(制水門)의 문(),

7편 순도잔교(馴導棧橋),

8편 잡부(雜部),

9편 선거통수(船渠通水),

10편 준공(竣工)으로 진행과정이 사진에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인천시 역사자료관은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인천항의 설비로서는 1893년 해면의 매축(埋築) 및 돌제(突堤)의 축조 등

약간의 시설은 있었지만, 일시적인 방편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1906년 이래 6개년 계획으로

공사비 약 88만 여원()으로 해륙 연결 설비와 그에 부수되는 공사를 시행해 19123월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공사는 본래의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1차적인 응급 설비에 지나지 않아,

다시 갑문식 선거(船渠)의 축조 계획을 세워 총공사비 566만 여원()을 들여

1911년 이후 10개년 계획으로 기공하게 됐다.

그 주요 공사로

갑문식 선거의 축조

육상(陸上)의 설비

항로의 준설(浚渫)

순도제의 축조

돌제(突堤) 및 파제제축조(波除堤築造) 등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 역사자료관 강옥엽 전문위원 비록 일제하에 행해진 항만개발이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인천항의 역사에서 100년전 초기 축항진행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은 그 사료적 가치는 큰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는 1930년대에 이르러 인천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항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이에 제1선거 보다 규모가 큰 제2선거 축조계획을 발의, 1935년 착공해 외곽공사를 완료하고 안벽기초 공사를

시행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제반물자와 동력부족을 겪으면서 1943년 공사가 중지됐다.

 

 광복 후 항만복구 5개년 계획(1956~1960)이 세워지고, 1962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항만개발이 다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인천항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김주희기자 blog.itimes.co.kr/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