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강화로- 김포 가을빛에 취하고 강화서 젖다

형과니 2023. 3. 28. 12:07

강화로- 김포 가을빛에 취하고 강화서 젖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1 17:17:40

 

 

 

강화도 인진나루에서 48번 국도 강화로는 바다로 빠진다. 끊긴 물길을 창후리가 잇고 있다. 마침 카페리 한척이 가을 볕이 눈부시게 내려쬐는 물비늘을 가르며 교동도를 향하고 있다.

 

사진/조형기전문위원·hyungphoto@naver.com

 

 

 

53.강화로>5< - 김포 가을빛에 취하고 강화서 젖다

 

#김포의 가을빛

 

강화로는 김포를 거쳐 강화로 가는 길이다. 한강이 서해로 벋으며 내는 물길에 땅길이 가끔 겹치곤 한다. 풍부한 물에 넓은 벌을 갖춘 김포는 쌀로 유명한 곳 답게 들판이 더할 나위없이 좋다. 짙은 초록에서 연두로, 노란 빛이 삼삼하게 물든 연두에서 다시 누런 빛으로, 익을수록 금빛이 짙어지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벼들의 순명으로 가을빛이 더 아름답다.

 

김포벌의 그런 넉넉함 때문일까. 김포에 대한 시나 그곳 출신의 문인이 별로 많지 않다. 문학이란 본래 결핍을 먹고 자라는 것이라 그런가. 그런데 김포의 한 묘원에 있는 시인의 묘가 지나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두르네 / 산도 언덕도 나무까지도.

 

 

 

여기라 뜬 세상 /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 서두르는가. -한하운, ‘하운(何雲)’ 일부

 

 

 

나병 때문에 아니 세상의 편견 때문에 한생을 떠돈 한하운 시인. 가다보면 발가락이 하나씩 없어졌다는 그의 외롭고 먼 길이 생각난다. 구름이 되고 싶은 마음을 김포에 누이고 그이는 이제 평화를 얻었을까. 시인의 아픈 길 앞에 한 사발의 뜨거운 김포 쌀밥을 올리고 싶다.

 

 

연산군의 유배지며 강화로의 종점이기도 한 교동도에는 고려성지와 교동읍성이 있으며 고려산에 오르면 북녘땅 연백평야를 가까이 볼 수 있다. 가을 주말을 맞아 교동도를 찾는 이들이 배에 오르고 있다.

 

 

 

 

#문득 눈물겨워지는 가을 들판

 

가을이 풍성하다. 들판을 그저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느낌이다. 그래서 더 눈물겹기도 하다. 우리의 이 밥 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배어 있는가. 이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쟁을 거쳐 왔던가. 이 밥이 얼마나 높은 보릿고개 너머에서 흰 김을 뿜고 있었던지, 돌아보면 근대화의 길이 너무 어지럽다.

 

그런데 이제는 60대 이상 노인들만 남아 농사를 짓는다. 하건만 저렇게 눈부시게 들판을 길러 내다니, 눈물겨운 노릇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밥이 거의 다 노인들의 손에 자란 것이고, 날마다 아파트로 바뀌는 들판을 생각하면, 더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김포 쌀밥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기만 하다.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은 뜨거웠다. / 뚜껑을 여니 김이 나는 김포 하성의 하얀 쌀밥 /

 

김포 땅은 어쩌면 이렇게 백미를 만들어내는 걸까. / 그랬더니 다시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진 쌀밥은 잘 익어서도 반짝이고 곤두서 있었다. -고형렬, ‘김포 하성 운호가든집에서일부

 

 

 

김포 쌀밥은 고향의 또다른 은유일 것이다. 고형렬 시인도 하얀 쌀밥의 기억에 다시 찾지만 그 집은 지상에 없다. 고향처럼 잃어버린 낙원처럼 기억 속의 밥이 그리운 시구에 같이 젖어든다. 군대 간 오라버니 밥을 흰밥으로만 꼭꼭 묻어두던 어머니의 마음이 시에 새삼 얹힌다. 밥은, 흰밥은, 그렇게 몸을 누일 우리의 본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즈음은 혼식이 웰빙에 어울리는 밥이니, 쌀알을 남자에게만 퍼주었던 어머니들의 손도 세월의 한 귀퉁이로 밀려난 옛길만큼이나 무색하다.

 

김포 벌에서 받아 안은 마음의 쌀밥을 든든히 새기며 답사팀은 강화를 향해 달린다. 서해에서 드나드는 물을 만나는 곳마다 포구의 흔적과 크고 작은 다리들이 있다. 그 다리도 한때는 유용했으나 이제는 물러나 앉은채 시간의 퇴적만 받아내고 있다. 녹슨 시간들이 쌓여 언젠가는 무로 돌아가리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염전 그리고 고인돌의 기억

 

염전들 역시 그러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바다 근처에서 흔히 보던 염전이 흔적도 아스라한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것이다. 땡볕 아래 몸을 발리던 소금과 그 소금을 긁어모으던 모습들이 흑백 스냅처럼 스쳐간다.

 

염전이 있던 곳 / 나는 마흔 살 / 늦가을 평상에 앉아 /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 눈부시다 -이문재, ‘소금창고일부

 

 

 

김포벌이 키운 이 시인은 농업박물관 소식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농업박물관에 연결한 발상이 놀랍거니와 그런 세태가 막막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을 가끔씩 담아낸 시인이 더듬어보는 염전의 기억 속으로 잠겨든다. 오후의 가을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는 착시 속에서 김포를 지나 강화로 들어선다.

 

강화는 아직 시골 장터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양과 가까운 서해의 섬이라는 위치때문에 강화에는 많은 역사가 덧쌓여 있다. 그 뿐인가, 사연 많은 유적들 사이로 고인돌 또한 산재해 있다. 그래서인지 강화에서는 시간이나 바람도 다르게 다가온다.

 

 

 

불시에 따라 묻힌 권속들의 신음을 / 풍상에 되새기듯 으늑한 저 표정이/

 

일몰을 휘감고 앉은 마지막 족장 같다

 

 

 

그러나 앉은 채로 풍화를 꿈꾸기엔 / 순장의 침묵이 비명보다 깊어서 /

 

아직도 눈뜬 주검의 주문을 받는다고

 

 

 

밤이면 그 혼일랑 모조리 들쳐 업고 / 청동기 우물께로 마실 다녀오는지 /

 

육중한 죽지 안쪽에 바람이 그득하다 -정수자, ‘고인돌일부

 

 

 

청동기시대의 무덤, 고인돌. 그 오랜 시간을 건너온 육중한 돌들이 죽지를 접은 커다란 새 같다. 더러는 어느 부족의 족장처럼 위엄이 넘친다. 풀이 가지런히 자라있는 고분에서 느껴지는 평온보다 어디론가 곧 뜰 것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그런데 큰 돌일수록 곁에 서면 꼭 순장당한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밤이면 고인돌이 혹시 그들을 들쳐 업고 옛 마을 어딘가로 날아갔다 오는 건 아닐까.

 

문득 커다란 날개를 편 익룡처럼 고인돌이 하늘 그득 날아오르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고인돌의 시간 여행과 상관없이 길 한편에서는 햇고추가 따가운 가을볕에 제 몸의 시간을 말리고 있었다.

 

 

 

김포시 장릉묘원에 자리한 시인 한하운 묘소. 그의 묘비 뒷면의 '보리피리 불며 봄언덕 고향사 그리워 피-리 닐니리'라는 시구가 시인의 애잔한 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교동도 너머의 먼 길

 

강화도 인진나루에서 길은 바다로 빠진다. 뚝 끊긴 길 끝 초소에 올라 만감에 젖는다. 저 앞의 섬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 거기서는 북한이 빤히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옅은 구름이 끼어 북의 산하를 희미하게만 볼 수 있었다. 물은 철조망을 핥으며 하염없이 오고 또 가지만 사람은 못 가는 곳이 너무 많다.

 

끊긴 물길은 창후리가 잇고 있다. 마침 배 한 척이 가을볕이 눈부시게 내려쬐는 물비늘을 가르며 어디론가 간다. 저렇게 아무 곳이나 배가 가고 사람이 오고 그러면 길들도 제 운명이 얼마나 편할 것인가. 철조망을 두르고 서 있는 우리의 길마다 그것들을 죄다 풀어주고 싶다.

 

/정수자 시인·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