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의 미추홀

외규장각 도서 

형과니 2023. 3. 28. 12:16

외규장각 도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2 10:10:38

 

외규장각 도서 

 

미추홀 -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지금 강화부 정족산성 사고(史庫)에 보관된 실록을 햇볕에 말리는 비서랑(秘書郞) 이병소(李秉韶)가 보고한 글을 보니, 인조 때 정축년의 실록 두 책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실록이 과연 어떠한데 이와 같이 잃어버렸으니 놀랍고도 황공합니다." 궁내부 대신 협판 윤정구(尹定求)가 이렇게 보고하자 고종 황제는 "실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런데 어느 해에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이런 일이 어디에 있는가? 직무에 태만한 것치고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놀랍고도 통분하여 차라리 말하고도 싶지 않다."고 했다.

 

107년 전, 어전(御殿)에서 있었던 장탄식이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계속 나간다면 각처(各處)의 사고(史庫)에 책이 하나도 남지 못할 것이니, 관련자마다 응당 심문해야 할 것이다."며 쇄서(?)를 등한히 한 자들의 죄를 엄히 물었다.

 

그런데 문제가 벌어졌다. 복명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 이병소가 자세히 점검치 않은 게 사단이었다. 비서랑 최병철이 다시 조사해 보니 분실됐다던 인조조의 두 책이 다른 궤 속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귀양 갔던 이들은 방송됐다.

실록 분실 사건을 보고 받은 고종 황제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당했던 모욕적인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국가의 문헌과 전적을 그토록 중히 여겼던 우리 선조들이었다.

 

최근 재불 김중호 변호사와 시민 단체 '문화연대'가 외규장각 도서 반환 행정 소송을 프랑스 정부에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1978년 박병선 박사가 191279권 가운데 필사본조차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 63권이나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지 29년 만의 일이다. 프랑스가 정녕 자신들이 자부하듯 문화 선진국이라면, 약탈 문화재를 국유 재산이라 강변하며 반환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인천의 문화계나 시민 단체들도 이를 남의 일처럼 내맡겨둔 채 '프랑스와의 문화 교류' 운운하며 허세를 부릴 일이 아니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