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마군(色魔軍)
색마군(色魔軍)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3-12 10:11:47
색마군(色魔軍)
미추홀 -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일본의 우익들이 또 망언 연속이다. 자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업자들의 강제 연행은 있었는지 몰라도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소위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1993년에 발표한 전 관방장관 고노의 담화가 일본군과 정부의 강제 연행을 인정하고 있음으로 그를 수정토록 요구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현 총리 아베가 맞장구 친 게 엊그제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확실한 증거가 많다. 중국 무한(武漢) 지구 전 병참사령부 위안계장(慰安係長) 야마다(山田淸吉)는 일본 아사히신문이 1988년에 발행한 '일본의 역사'에서 "위안부대는 군이 직접 감리한 조직으로 외국 군대에는 없는 독자 구조"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시모노세키 지역의 노보동원부장(勞報動員部長)이었던 요시다(吉田淸治)도 "총독부가 경관을 동원하여 어린 여성을 강제적으로 한 마을에서 3~5명 혹은 10명씩 연행해 2백여 명쯤 되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보내왔다. 여기서 그들을 수송선에 태워 중국이나 남방(南方) 전선으로 보냈다."고 전하고 있다. 또 1938년 한구(漢口) 소재 제6위안소 '앵루(櫻樓)' 입구에 걸려 있던 '등루자 심득'이라는 사진 자료를 보면, 관리자인 병참사령관 이게타(池田龍)는 자신의 명의로 "삿구(콘돔)를 필히 사용한 후 세척할 것" 등 5개 항을 부하들에게 직접 시달하고 있었다.
그것이 일본군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대동아공영을 위해 헌신한 영광스런 황군(皇軍)이 아니라, 최전선에까지 위안부대를 끌고 다니지 않으면 군대를 유지할 수조차 없었던 20세기 유일의 색마군(色魔軍)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일부 열등한 정치인과 아베 총리만이 모르고 있는 일이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