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거리
효의 거리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3-12 10:23:08
효의 거리
옛날 어른들이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한 아기가 문틀에 손가락을 찧어 엄마에게 “호호” 불어 달라고 했다. 마침 병상의 엄마는 오늘 내일을 넘기기 어려운 경각에 있었는데 그런 사실도 모르며 평소 처럼 다친 손가락을 엄마의 입술에 가져갔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기의 손가락 피를 마시고 치유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중병의 부모에게 자식이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함으로써 소생케 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과학적으로 그렇게 해서 위급한 환자가 살아날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각지의 읍지 효자난에 으레 소개되던 이야기이다. 앞서의 아기는 우정 엄마를 위해 피를 낸 것은 아니었어도 효과를 강조하는 예화였던 것이다.
이같은 단지(斷指) 이야기는 특히 1910∼20년대에 많았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경북 예천의 한 효자는 모친의 병이 위독하자 왼손가락을 자상 피를 마셔드렸으나 결국 사망했다. 함남 함흥의 11세난 소년도 어머니가 위독하자 왼손가락에 피를 내 마시게 했다. 인천시 내동의 김모 여인은 남편이 폐질환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했었는데 무명지에서 피를 내어 마시게 했더니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발병으로 남편은 사망했다.
조선조 중엽의 형제 이찰과 이율도 그런 효자였다. 그들은 부평부 서면 갈월리에서 태어난 전주 이씨의 명문으로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부친이 병들어 백방으로 약을 구해 봉양했어도 위독하자 어린 형제가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부친의 입에 넣어 드렸다. 부친은 일시 소생했으나 며칠후 세상을 뜨고 말았다. 형제는 정성드려 장례를 모시고 3년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모친의 경우에도 똑같이 해 드렸다. 현종 임금이 그들의 효행을 기려 정려를 내렸다.
지금도 더러 부모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놓는 효자가 있다. 맹자께서도 ‘효자의 지고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것이 없다’고 했듯 시대를 막론하고 효는 인륜의 으뜸가는 덕목이다. 부평구가 부개3동 일대에 ‘효실천 거리’를 조성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