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손때 타는 서창동

형과니 2023. 3. 29. 00:23

손때 타는 서창동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2 10:29:12

 

손 때 타는 서창동

 

 서창동의 지명은 예전 사환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어디를 기준해서 서쪽이며 그리고 동쪽에도 동창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창이었다. 사환곡이란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쌀을 꾸어주고 가을 추수때 갚도록 하는 제도였다. 물론 이식을 보태 징수했다.

 

 예전의 농민은 거개가 가난하여 한해 양식을 사환곡에 의존했다. 가을에 추수하면 셈평이 피려나 했다가도 사환곡을 갚고 나면 다시 곡식을 빚내 먹어야 했다. 그러니 얻어 먹고 갚기의 반복이었다. 여기에다 박하게 주고 후하게 받는 등 관리의 농간이 있어 농민은 더욱 암담했는데 조선조말 이로 인해 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런데 서창동 인근에는 마침 창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멀리 있는 창고에서 양곡을 얻어 오고 또한 실어다 갚아야 하는 불편이 컸다. 그리하여 근방 농민들이 이곳에도 창고를 지어 줄 것을 여러 차례 청원했는데 주민의 노력 부담으로 창고를 짓도록 허락이 떨어져 실현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양곡선이 드나들수 있도록 갯골을 파고 선착장을 설치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동사무소 위치가 옛날 창고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서창동의 유래는 인천시사에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다. 1906년 관제개혁때 설래 곡촌 독곡의 3개리였던 것이 1914년 부군이 통합하면서 비로소 서창(西倉)리가 되었다. 1940년 당시 인천부의 부역 확창으로 인천에 편입되어 일인들에 의해 浪速(낭속)정이 되었다가 해방후 1946년 서창(西昌)동이 되었다. 보다는 이 의미있으니 서해에서 창성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창동은 더러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도 아직은 한적한 교외지역이다. 광활한 농경지가 전개되어 여름철이면 파아란 전원이 싱그러움을 제공한다. 인근 염전지대에는 해양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택지로 개발한다는 소식이 잦다. 인천에 별로 남지 않은 전원을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해서 영 개운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