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장의 재기
중앙시장의 재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2 10:30:07
중앙시장의 재기
지금의 중앙시장 일대는 원래 버려진 논바닥이었다. 송림초등학교 앞으로 해서 송현 화평 금곡동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 것이 30년대 만화로가 개설되는 등 일대가 정비되면서 시장이 자리잡게 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성극장 자리에서 동인천역 축대앞 까지 당시로는 규모있는 목조의 상설시장이 개설되었다. 이름하여 ‘인천일용품시장’이다. 여기에는 일용잡화를 비롯 식료품과 음식점에다 동인천역 쪽으로는 목재소까지 가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축대밑 개천가로는 야시장이 열려 항도의 낭만을 돋구었다.
이것이 일시에 사라진 것은 해방직전 패색이 짙던 2차대전 말엽 일인들이 소개지역이라며 건축물을 모두 철거하면서이다. 해방이후 이자리에 시장이 다시 들어선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비록 판자집이나마 제법 시장의 형태를 갖췄다. 이곳 송현동 100번지를 모체로 답동 숭의동 도원동등 각처의 노점상인들을 조합원으로 유치한 것이 오늘날의 중앙시장의 근원이 되었다. 당시 중앙시장은 대구 부산 등지 보다 규모가 컸으며 47년도의 매상고가 전국 1위를 찾이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시 6.25전란으로 깡그리 회진되는 비운을 당했다. 전쟁에서 수복되어 돌아온 상인들이 이곳에 판자촌 시장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59년 인천시의 ‘시민의 복리증진을 도모한다’는 시장 설치조례 공포와 함께 인천 경제의 중심지로서 번창할 수 있었다. 66년에는 동인천역 지하도 조차 개통되어 도심과 연결되면서 더욱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강화도를 비롯한 도서지역의 서울 직거래와 교통수단의 발달등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이 중앙시장을 날로 침체의 길을 걷게 했다. 시장 안을 거닐어 보면 이곳이 어느 시골 장터인가 여겨질 만큼 한산하고 퇴락해 있다. 근래 소방도로의 개설 등 정비 노력이 눈물겨우나 여간해서 상황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경인전철의 복복선에 맞추어 대대적인 환경 개선사업이 추진되리라 한다. 헐리면 다시 열고 불타면 다시 서는 불사조와도 같은 중앙시장의 재기를 눈여겨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