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동 언저리
송학동 언저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5 04:25:46
송학동 언저리
인천시 송학동은 자유공원이 자리한 응봉산 언덕이 서남으로 흘러내리는 지역이다. 인천항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어 주택가로 더할 곳이 없다. 따라서 개항당시 각국지계의 중심이 되었으며 서구인의 거주지였다. 우리나라를 병탄한 일인들이 이곳에 시청을 앉히자 일약 고급 주택가가 되었다. 지금도 서구식 건물 정원들이 남아있다.
이곳은 원래 인천부 부내면의 작은 야산으로 개항때만 하더라도 민가가 더러 있을뿐이었으나 개항과 함께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 산위에 새로된 마을이라 하여 일인들이 그들식의 이름 산수정(山手町)이라 하고 자기네 터전으로 삼았다. 광복직후 왜식동명 변경때 송학동으로 개명하고 1, 2, 3가로 나눴다.
송학동1가의 남부교육청 자리는 원래 일인 유치원이 있었다. 그들 황태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개원했다고 해서 기념(紀念)유치원이라 했다. 원아는 물론 일인 자녀요 혹 조선인 어린이가 섞여 있었다. 광복을 맞았을때 원장은 중년의 여인 아끼모토였다. 지금의 토촌 음식점이 된 경찰서장 관사에서 조금 올라가 언덕에 살았다.
유치원 언저리는 일인 어린이의 놀이터였다. 봄이면 잔디에서 일어로 ‘스미레’라 하는 제비꽃을 한줌씩 뜯어 집에 가져 갔으며 가을이면 도토리를 줍고 여름이면 습기 찬 풀밭에서 달팽이를 주워 모았었다. 일인들이 물러간뒤 6.25 동란때는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일대가 북한군의 해안포대 설치와 UN군의 함포사격으로 폐허화 했었다.
그곳에 인천시교육청이 자리한 것은 50년대-교육기관 자산인 유치원터여서 자연스럽게 교육청 후보지가 된 듯하다. 그곳에 2∼3층의 청사를 신축했다가 구월동 지금의 광역시 교육청으로 옮겨가고 교육구청제 실시로 남부교육청이 자리했다. 다시금 낡고 비좁은 교육청사가 도화동에 새청사를 짓고 옮겨가리라 한다.
다만 바라고 싶은 바는 교육청이 나가더라도 건물을 공원 부설의 시민이용 공간으로 하던지 철거하여 공원면적을 넓혔으면 한다. 지금 자유공원은 협소하여 과감한 남하확대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