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쇼 사건
마루쇼 사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6 04:09:00
마루쇼 사건
인천시 중구 내동-인천의 명동으로 불리던 거리였으나 지금은 그렇지를 못하다. 겉으로는 화려한 의상의 거리인데 뒤안길의 신포시장과 함께 최근에 새롭게 단장을 하는 등 상권의 부흥을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도 여간해서 되살아나지를 못한다.
그 한귀퉁이인 재판소-법원과 검찰청의 지칭-로 들어가는 길목도 그러하다. 그 좁은길로 공판정에 서야할 미결수를 실은 버스가 드나들었다. 좌회전으로 들어서는 모서리집이 내동식당이고 방앗간이 이어 있었다. 이모 노인이 경영하던 식당의 추어탕이 좋았었다고 지금도 노인들은 기억한다.
내동식당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이씨의 아우되는 사람이 일본서의 한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소위 ‘마루쇼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이득현-55년 일본 시즈오카의 한 운송점 여주인이 살해되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트럭을 몰고 인근을 지나갔다고 해서 살인강도범이 되었던 것이다.
이씨는 법정에서 범인이 아님을 극구 주장했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없음에도 다만 재일한국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범인이 아닌 조작된 범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양식있는 일본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일본내는 물론 우리나라의 양식있는 법조인들로 이씨의 무죄를 주장 구명운동을 전개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그는 무기징역에 처해졌었다. 그는 22년간의 옥살이 끝에 77년 가석방되었으나 그동안 부인과는 사별 두 자식의 행방은 묘연했다. 재심을 청구했으나 번번이 기각되었었다.
그는 지난 82년 인천에 잠시 다녀간 후 89년초 일본서 사망했다는 부음을 전해준 것이 끝이었었다. 고향이라고 찾아와 보았자 “그애는 범인이 아닙니다. 사람을 해칠줄을 모릅니다”던 형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사망했을때 4단제목으로 크게 달아준 일본신문에 비해 국내신문은 1단짜리 단신으로 처리했을 뿐이었다.
오늘 17일은 77년 그가 가석방 되었다는 날이다. 묵은 지면에서 그것이 눈에 띄어 잠시 지난일을 회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