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미나리 캐러가자
참미나리 캐러가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6 04:12:50
참미나리 캐러가자
이항복이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상소를 올렸다가 북청에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지에서 음식이 맞지않아 늘 서울 북문 밖 샘물과 왕십리 미나리로 담근 김치 생각이 났으나 도리가 없었다. 그럴 즈음 정충신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살피다가 놀랐다. 대감이 장차 죽을 조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급히 샘물과 왕십리 미나리를 장만하여 귀양지로 떠났다. 그곳 사람들에게 자기가 왔음을 알리지 못하게 하고 서울 샘물로 차를 끓이고 밥을 짓는 한편 왕십리 미나리로 찬을 만들어 올리게 했다. 밥상을 받은 대감이 이렇게 물었다. “정충신이 왔구나. 그런데 어찌 나를 만나지 않는고”. 정충신은 이항복에게 학문을 배운 무장이었다.
미나리는 비타민이 풍부한 알카리성 식품으로 옛부터 약용으로도 많이 사용하였다. 입맛이 없을때 미나리 무침을 먹으면 식욕을 돋우며 술 마시기전 미나리즙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왕십리채’라 하여 왕십리에서 나는 미나리로 담근 김치나 혹은 무친 나물은 이름났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물론 근래까지도 그곳은 미나리와 배추가 많이 나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미나리에는 어떤 주술이라도 있었는지 옛전에 아기가 태어나면 갓난 아기를 씻긴 후 미나리즙을 입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아기들 돌상에도 미나리 나물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미나리가 흉물이었다. 즉 그리스인들은 미나리를 엮어 무덤에 놓았는데 그래서 병이 위중하면 미나리 묶음을 받을때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인천시 서구가 미나리 산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10여년전부터 경서동 일대에 미나리꽝이 성하다고 했는데 그곳에 습지가 많은 때문인 듯하다. 서울 가락동의 도매시장 거래량의 70%가 서구 것이라니 미처 몰랐던 사실이기도 하지만 생산량도 많은 듯하다. 서구청에서는 미나리를 활용한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깊고깊은 깊은논에/참미나리 캐러가자…’ 옛 미나리 민요의 서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