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3면(麵)을 말한다
인천의 3면(麵)을 말한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7 16:48:42
인천의 3면(麵)을 말한다
매콤 달콤 시원∼ 면발에 녹아있는 역사와 문화
후룩룩… 더위를 말아먹자.
무더운 여름, 자칫 입맛을 잃기 쉬운 계절에 간절히 생각나는 것은 시원한 국수.
점심에는 별식으로, 출출한 밤에는 야참으로, 국수 가락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다.
음식은 사람이 꼬이는 곳에서 전파되고 발전한다.
개항이 되자마자 인천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새로운 음식이 탄생되기도 하고 유입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냉면, 자장면, 쫄면이다. 이들 면발에는 인천 특유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다.
냉면
이북에서 ‘남하’한 냉면은 인천에서 활짝 꽃 피웠다. 인천은 일제강점기에 쌀 거래장인 미두취인소가 설립되면서 사람과 돈이 넘쳐났다. 시내 곳곳에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근대식 외식업소의 등장은 인천이 서울보다 앞섰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에 설렁탕과 장국밥을 파는 집은 흔했지만 아직 냉면 국물을 맛보기 힘들었던 시절에도 인천 곳곳에는 창호지를 오려만든 냉면집 깃발들이 골목마다 나부꼈다.
인천냉면은 지금의 용동 마루턱에 자리잡고 있던 평양관(平壤館)이 원조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 답동 성당 옆의 사정옥(寺町屋)과 배다리 너머에 있던 금곡루(金谷樓) 등이 한때 이름을 날린 냉면집들이다.
인천의 냉면집은 직접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았지만 주문이 더 많았다.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과 신태범 박사의 <인천한세기>를 보면 미두취인소 직원들이 점심에 냉면을 한꺼번에 스무 그릇 이상 시키곤 했다. 그러면 배달꾼은 냉면그릇을 얹은 긴 목판을 어깨에 멘 채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마치 서커스를 하듯 달리는 배달꾼들이 나타나면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진풍경을 감상하곤 했다. 오늘날의 ‘철가방’이 봐도 경탄할 만한 곡예배달이었다.
한때는 서울 한량들이 경인선 열차를 타고 인천으로 ‘냉면여행’을 오기도 했고 심지어 명동이나 종로까지 자전거로 냉면을 배달했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도 전해온다. 더러 경인열차 차장 너머로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줄지어 가는 냉면배달 자전거 행렬을 보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증언’도 있다.
한동안 인천의 냉면은 사람들의 입맛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인천 특유의 냉면 맛이 구미를 당기기 시작하고 있다. 세숫대야 냉면으로 잘 알려진 화평동 냉면은 1980년대 초반 동인천역 부근 화평철교에서 옛 인천극장 쪽 언덕길에 하나둘씩 문을 연 것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열대여섯 곳 정도의 냉면집이 모여 냉면집 단지를 이루고 있다.
화평동 냉면의 명성은 일단 그 양에서 비롯되었다. 물 2ℓ정도는 족히 담을 수 있는 냉면그릇은 언뜻 보면 세숫대야와 비슷하다. 여기에 가득 말아주는 냉면의 양은 일반 냉면집의 3∼4배에 달한다. 그것도 모자라 냉면사리를 원하는 만큼 무한정 공짜로 준다.
화평동 냉면은 양뿐 아니라 맛도 뛰어나다. 특유의 얼큰하고 시원한 맛은 이 곳만의 비법으로 만든 고추장 양념에서 나온다. 오이·무·열무 외에 깨를 많이 쓰는 것도 특징이다. 고추장의 매콤함과 깨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특유의 맛이다. 아주 추운 겨울철을 제외하고 냉면그릇에 담겨 나오는 주먹만한 얼음덩어리는 보기만 해도 몸을 얼게 만든다. 기존의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과 달리 화평동냉면 국물에 매료된 사람들로 인해 세숫대야냉면은 서서히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인천 특유의 또 다른 냉면은 섬냉면이다. 이 냉면은 주인의 출신지에 따라 옹진냉면, 사곳냉면, 황해냉면 등으로도 불린다. 이 냉면은 면이 투박하고 육수를 부어마시는 게 평안도식 냉면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맛은 조금 다르다. 섬에서 자란 메밀의 향기가 육지의 그것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구수한 향기에 달착지근한 느낌이 혀에 감돈다.
특이한 점은 식초와 겨자 뿐 아니라 백령도의 으뜸 특산품인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타 지역에서 맛볼 수 없는 묘한 맛이 혀에 감돈다. 분명한 것은 시원하고, 비리다는 것. 섬 냉면에는 그렇게 진한 바다냄새가 담겨져 있다.
맛집 정보 _ 섬 냉면집 /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사곳냉면(836-0559), 옛 시민회관 건너편 골목길에 있는 옹진냉면(875-0410), 남동구 구월동 낙원교회 근처 백령도 메밀냉면(468-8856) 모래내시장 건너편 골목 황해 손모밀냉면(464-8349), 남부세무서 앞 백령사곳 메밀냉면(469-1645)
자장면
중구 북성동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흔히 청관(淸館)이라고 불린다. 이는 ‘청나라 관청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인천에 중국인들이 거주하게 된 것은 인천이 개항하기 전 해인 1882년부터이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정부의 요청에 따라 40여명의 군역상인을 동반한 군대를 파견한다. 공식적으로 청나라 상인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듬해 조약이 체결되면서 청국지계가 설정되고 북성동 일대 5,000여평 부지에 화교거주지가 형성되고 청국영사관이 문을 열면서 자치지역을 만들어 나갔다. 그 동네의 이름은 양국의 친선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선린동(善隣洞)이라고 불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될 때까지 화교의 수는 점점 늘어 3천 명에 이르고 거주지역은 경동 싸리재까지 확대되었다. 이후 대륙에서 정변이 일어나고 산동지방에 소요가 일자 중국인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황해를 건너 인천으로 다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막노동꾼인 쿨리(苦力·coolie)들이 상당 수 끼어 있어 부두노동자로 생활했다.
이즈음에 탄생한 것이 자장면이다. 그들은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먹었다. 그것이 오늘날 자장면의 기원이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자장면의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음식점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이다. 지금은 문을 닫고 간판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긴 채 빈 건물로 남아있지만 청관거리 중국집들은 대개 공화춘 출신 주방장들이 전통을 이어갔다. 공화춘의 번창에 힘입어 화교들은 중화루, 동흥루 등을 잇달아 개업, 인천은 청요리의 본산으로 자리잡는다.
자장은 작장(炸醬)에서 유래한다. 작장은 장을 볶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춘장으로 부르는 새카만 자장은 산둥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밀가루장(면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장면이 본격적인 서민의 먹거리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60년대. ‘메이드 인 인천’ 자장면은 라면, 비빔밥과 더불어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요리전문가들에 의해 선정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자장면의 하루 소비량은 800만 그릇에 달한다. 내년에 자장면의 원조 인천에서 ‘자장면 탄생 100주년’축제가 열린다.
맛집 정보 _ 북성동 차이나타운 외의 전통 중국집들 / 신일반점(882-1812 옛 시립병원 건너편), 진흥관(875-1664·주안사거리 골목) 연중반점(422-0791 석바위 사거리)
쫄면
쫄면은 대한민국 어느 분식집에 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쫄면의 맛은 새콤달콤한 고추장 맛이다. 그 매운 맛이 잃어버린 여름 입맛을 되살려준다. 고추장과 함께 콩나물, 당근, 깻잎, 상추 등 갖은 야채를 비벼먹기 때문에 국수치고는 영양가도 높다.
일반 국수나 냉면과 달리 누르스름하고 쫄깃쫄깃한 쫄면은 구전(口傳)에 의하면 중구 경동에 있던 광신제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냉면을 만들다가 실수로 굵은 면이 만들어져 나왔는데 이를 분식점에 보여주니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되었다고 전해진다.
태어난 곳은 경동이지만 쫄면이 메뉴판에 정식으로 등재된 곳은 중구 인현동 옛 축현초등학교 사거리 부근의 분식점 골목이다. 처음 쫄면을 요리해 내놓았던 분식점이 어디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딱히 어느 집에서 시작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학생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너도나도 그 음식을 따라 만들었다”고 이 일대 음식점 주인들은 회상한다. 70년대 ‘먹쇠·명물당·맛나당’등 이 일대에만 무려 20∼30여 곳의 분식점이 모여 있던 골목에서 ‘쫄면’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얄개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으면서 주메뉴로 자리잡게 되었다.
쫄면을 동네 음식에서 전국적인 먹거리로 발전시킨 곳은 신포우리만두. 1971년 동구 송현시장에서 3평짜리 분식집으로 출발한 신포우리만두는 테이블 2개를 놓고 호떡, 순대와 함께 연탄화덕에 솥을 걸고 만두를 쪄서 팔았다. 손맛은 금방 소문이 났고 늘 손님이 붐볐다. 77년에 가게를 12평으로 넓혀 중구 신포시장에 ‘우리만두’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때부터 쫄깃쫄깃한 쫄면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이후 가족들이 릴레이식으로 시내 곳곳에 신포우리만두 분점을 내기 시작했고 체인점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신포우리만두’라는 간판을 단 체인점은 전국적으로 200여개. 인천이 만든 쫄면은 이제 종로, 강남 그리고 부산은 물론 LA의 한인타운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새콤매콤하고 쫄깃한 쫄면이 세계의 식탁을 정복할 날도 머지 않았다
글 _ 유동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