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서인천IC~백석초교

형과니 2023. 4. 2. 07:35

서인천IC~백석초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22 01:04:59

 

 

꽃뫼길로 이어진 `마루금' 운치 절로

내고장 우리산 길찾기-생태 문화재 탐사 종주/서인천 IC~백석초교

 

2구간: 서인천IC백석초교(14.3)

 

산은 언제나 정상을 뜻하지 않는다. 산경원리에서 산의 개념은 산자락에 위치한 들판까지를 포함해 하나의 이름으로 인식한다.

 

산을 역사와 문화를 창조한 모태로 믿어온 선조들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산줄기는 물줄기와 생활, 언어를 가름하고, 결국 크고 작은 산과 길고 짧은 산줄기가 우리를 낳고, 살게하고, 때로는 편안한 쉴 자리를 제공해왔다.

 

이렇듯 모든 일이 우리 문화의 원형을 정확히 파악하는데서 시작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면 당연히 그 중심에는 우리의 산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5월의 첫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비웃듯 아침부터 검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걷힐 기세다.

 

두번째구간은 경인고속도로 서인천나들목을 출발해 천마산과 징맹이고개, 계양산, 꽃뫼, 신공항고속도로를 거쳐 백석초등학교까지 지도상 14.3.

 

지난구간 종착점인 가정동 육교아래 공원에 집결한 종주팀 9명과 5명의 일반 참가자들은 간단한 구간설명을 마치고 들머리를 찾아 나섰다.

 

하나아파트(오전 825) 단지내 절개지 등로를 들머리로 따라오르면 초입부터 철탑(오전 835)이 종주단을 가로막고 서있다.

 

이번 구간부터 답사팀이 후등자들을 위해 매달아놓은 한남정맥을 넘어 갑비고차로라고 쓰여진 노란색 리본이 마루금을 안내한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올라서면 천마의 말발굽자욱이 있는 마제석과 천마의 전설이 서린 천마산(오전 850) 정상이다.

 

정상에는 초소가 있고 서해의 광활한 간척지와 멀리 영종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부터는 안하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효성동 뒷산인 중구봉(오전 1005)까지 마루금이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고려시대 불교행사인 중구절(99) 의식을 치루던 곳이라해서 붙여진 이름.

 

중구봉을 내려서 길마재와 돌탑을 지나면 인천에서 가장 높고 긴 고갯길로, 백제시대부터 공촌동 일대의 소금을 서울로 실어나르던 통로로 활용되던 징맹이고개(오전 1045).

 

징맹이고개란 매를 징발한다는 징매에서 나온 말로 고려중엽 매사냥이 성행하던 시절 매방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얻은 지명이다.

 

계양산 등반을 앞두고 종주팀은 잠시 간단한 식사시간을 겸한 휴식을 갖고 다시 등산화 끈을 고처맨다.

 

이번 종주가 우리가 사는 땅의 등줄기를 밟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면 당연히 능선의 마루금을 놓치지 않는데 그 초점을 두어야한다는 생각에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20여분 급경사길을 오르면 헬기장을 지나 대동여지도에 안남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계양산 정상(오후 1210).흉물스런 중계소 철탑이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정상엔 나무의자 등으로 쉼터를 만들어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계양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개발제한구역인데다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비교적 숲이 우거져 있다.

 

작은장리고개(오후 135)를 지나 꽃뫼길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이름만큼이나 호젓한 능선길이다.133m 높이의 작은 봉우리인 꽃뫼를 넘어서면 2구간의 막바지다.그러나 산행의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종주단을 가로막는건 공항고속도로와 굴포천방수로.

 

4년전 한남정맥 종주때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어렵지 않게 가로지르던 구간이지만 지금은 횡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회를 위해 절개지 등로를 타고 내려와 최근 아파트가 들어선 검암택지2지구(오후 240)를 지나 다음 구간 출발점인 백석초등학교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6시간15분 걸린 이번 구간에서 공항고속도로를 포함해 2곳의 절개지와 6개의 정상 헬기장을 만났다.

 

전통시대 부평도호부의 영역에 해당하는 2구간은 능선의 동쪽으로는 부평도호부의 마장면(효성동)과 부내면(계산동), 서쪽으로는 석곶면(가정동)과 모월곶면(연희·백석동)이 자리하고 있다. 3구간은 오는 8일 오전 8시 백석초교에서 출발한다.

 

/이원구기자 blog.itimes.co.kr/jjlwk

 

백성들이 나라 구하려 성곽세워

구간 따라잡기/중심성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는 백성들의 마음이 한데 모여 성이 되었으니, 그 성이 바로 중심성’(衆心城)이다.고종20(1883) 부평부사 박희방이 부민들을 동원해 계양산 서남쪽 경명현(일명 징맹이 고개)에 돌을 쌓아 성곽을 세웠다.

 

지금은 매립해 땅(서구 경서동 방향)이 돼 있지만, 당시만해도 이 지역은 해안선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다. 특히 수도 한양까지 거리가 70리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평야지대라는 점에서, 개항기 부평부는 경기연안은 물론, 한양 방비에 중요한 곳으로 부각됐다.

 

고개 서쪽에 설치한 연희진과 포대가 임오군란으로 3년만에 폐지된 지 10개월만에 중심성을 쌓는다. 1883929일 공사를 시작, 불과 한달만에 일자형태의 성을 쌓았다. 그 중앙부인 경명현에 문루를 두로 이를 공해루라고 했다.

 

경명현은 일명 징맹이 고개’, 또는 경명이 고개라고도 부른다. 고려시대 이 곳에 매를 기르던 곳이 있었고, 매를 징응하였다 하여 징매이고개라 했다.

 

성곽 축조와 관련한 기록이 전무한 상태다. 다만, 성곽의 축성목적과 대상의 경과를 알게 해주는 중심성사적비1950년 미군의 포격으로 소실되기 직전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이를 필사한 것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부평부사 박희방은 새로 축조한 성을 중심성이라 했고, 이는 부민들의 정성을 모아 쌓았기 때문이라 전하고 있다. 비문에는 읍내 상·하동(계산1) 주민이 60()을 내어 공사자금으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다. 비문 끝부분에 상동 3인과 하동 2인의 이름을 기재한 것으로 보아 이들 5명이 60금을 모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심성은 계양산과 중구봉을 잇는 능선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계양산 쪽 능선에 일부 석축이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해방이후 도시화와 매립공사로 인해 원래의 지형을 살피는데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계양구청이 경명현에 생태통로를 만들고, 이와함께 중심성과 성벽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김주희기자 (블로그)kimjuhee

 

굴포천 방수로

 

공항고속도로와 함께 한남정맥을 가로지르는 굴포천 방수로.지난 20026월 계양구 선주지동(굴포천)에서 서구 시천동(서해)까지14.2구간에 걸쳐, 20m 깊이 20m로 임시 완공됐다.

 

이를 서울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까지 연결하는 수로가 바로 경인운하.서해에서 행주대교까지 총 연장 18에 폭 100m, 깊이 6m의 물길을 뚫는 이 사업은 환경논쟁에 휘말리면서 난항에 빠졌다.

 

지난 428일 굴포천 방수로의 폭을 최소 80m로 결정, 경인운하를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 됐다.하지만 굴포천 방수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가 서구지역을 남북으로 끊어 검단지역이 고립되기 쉬운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김주희기자 (블로그)kimjuhee